1999년 교육시민운동에 뛰어들어 한창 아이들의 교육문제를 두고 고민하고 있었다. 마침 담임하던 교회에서 IMF에 부모의 방임으로 방과 후에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을 열었다. 한편으로는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임시이사로 선임되어 방배동의 한 사립고등학교의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 설립자와 부유한 아이들이 다니는 사립고등학교 이사장, 서로 어울 수 없는 두 역할을 동시에 맡으면서 한국교육과 한국사회 아동복지의 맨 얼굴을 보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개천에서 용 난다.’는 믿음으로 자녀교육에 임하지만 이미 개천에서 용은 날 수 없다는 사실을 당시 우리나라의 교육제도와 정책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대강은 알고 있었다. 또 아이를 부모의 소유물쯤으로 생각하고 또 아이는 그 부모가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사회에서 국가는 아동의 복지에 대해 관심할 필요도 없었다. 아무도 이를 문제 삼지 않기 때문이다.

가난한 아이들과 부유한 아이들의 삶의 현실을 동시에 경험하면서 절실하게 깨달은 것 하나는 국가나 사회가 나서서 아이들에게 유아기부터 공평한 출발 기회와 출발선 제공하고 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 입할 때마다 그 기회와 출발선을 재조정해 주지 않는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개천에서 용 나는 일’은 없다는 사실이었다.

마치 토끼와 거북이가 100미터 달리기를 하는데 토끼는 50미터 앞에서 출발하는 것과 같은 부당한 경기와 같은 오늘의 교육현실에서 가난한 아이들에게 열심히 공부하면 기회가 올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기만이자 사기다. 아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교육과 복지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아이들에게 공정한 기회와 출발선을 제공해 주는 것이다. 아이들이 똑같은 출발선에서 공정하게 경쟁하도록 하는 것이 교육정책의 전제조건이어야 한다. 최소한 인간이 누려야 할 권리를 아이들이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동복지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이 경쟁의 결과에 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박경량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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