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여름의 하루,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마인강변에 벼룩시장이 섰습니다. 한 달에 두 번 열리는 이 시장은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펼쳐지는 자리입니다. 강변을 따라 족히 1킬로미터의 행렬을 이루는 모습은 장관이라 볼 수 있지요. 그 사이를 누비고 다니면서 시장 구경을 하는 것도 큰 즐거움이고요. 멀리서 보면 하나의 시장에 불과하지만 가까이 다가가 물건과 사람들을 살펴보면 또 다른 세상입니다. 자신의 물건을 가지고 나온 사람들과 무언가 필요한 것을 찾는 사람들은 연령과 성별은 물론이고 인종과 언어도 서로 다르기에 벼룩시장은 일종의 ‘문화백화점’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좌판에 진열된 각가지 물건들은 그처럼 다양한 문화의 산물이니 얼마나 가지각색이고 흥미진진한지요.

여기까지는 구경하는 사람의 벼룩시장 스케치라고 한다면 이제부터는 벼룩시장에 참여한 사람의 경험을 독자들과 나누려고 합니다. 벼룩시장에서 물건과 돈의 교환이 이루어지는 원리는 동네 슈퍼나 대형 백화점의 경우와 다르지 않았어요. 그러나 교환 과정은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한 예를 들어 이야기해 보지요. 저와 동행했던 제 아들이 책 한권을 선택해서 가격을 물었습니다. 그 좌판의 주인은 엄마, 아빠 그리고 귀여운 딸로 구성된 독일인 가족이었어요. 그 책은 한 수학자에 대한 평전으로 제법 부피가 나가는 것이었지만 그들이 부른 가격은 엄청 저렴했지요. 책을 건네주던 아빠는 그 책에 대한 간략한 내용과 그로부터 자신이 받은 영향, 그리고 그 책을 읽게 되었던 계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동시에 이 책을 선택하게 된 제 아들의 생각을 궁금해 하더군요. 이런 행위는 자신이 아끼던 책이 또 다른 독자에게 갖게 될 의미를 짐작하면서 그 책과 헤어지는 이별방식이 아닐까라고 저는 상상해 보았습니다. 그가 제안한 저렴한 가격도 단순히 중고품의 헐값이나 재고 처리비용이 아니라 책을 통해 맺어지는 좋은 인연에 대한 답례처럼 여겨졌고요. 그 날 벼룩시장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이 장면은 기독교인의 ‘경제적 살림’을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경제는 희소한 자원을 갖고서 사람들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활동으로 알려져 있지만, 기독교적 관점에서 경제는 하나님이 세상을 경영하는 방식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의 만물은 유기적 관계를 맺고 서로 의존하고 있기에,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세상에서 살아가는 피조물들 사이에 상생과 공생의 생활을 꾸려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경제 현실은 상호의존의 공생 관계와는 거리가 멀고, 저마다 크고 작은 이윤과 권력의 독점을 위해 끊임없이 경쟁하면서 고통과 불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축복 아래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아니라 맘몬의 지배가 만들어 놓은 결과입니다. 맘몬은 우리에게 삶의 안전을 위해서는 하나님보다 물질이 더 중요하다고 유혹하지요. 이 유혹이 얼마나 집요하고 강력한지는 하나님과 맘몬을 놓고 양자택일을 요구한 예수님의 말씀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맘몬의 방식은 공생의 의미를 보잘 것 없이 여기고 이윤 독점과 축적을 위해 상호의존 관계를 깨뜨림으로써 하나님의 세상 경영 방식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이런 맘몬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건 맘몬의 유혹을 경계하고 그것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이 아닐까요. 그 가운데 하나가 자족의 기쁨을 누리는 경제적 자존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맘몬의 지배 아래서 사람들은 소유가 많던 적던 간에 경제적 자존감을 유지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소유를 둘러싼 갈등은 사람들 사이에 공동체 관계를 깨뜨리고, 경제적 지위를 차지하려는 경쟁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황폐하게 만드는데, 이처럼 상호의존의 공생에서 벗어난 삶에서 경제적 자존감을 형성하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경제적 자존감을 누리며 살기 위해서 부유한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에게 요구되는 것은 사람들 사이의 공동체 관계입니다. 성서는 이 공동체 관계 개념을 정의라고 가르칩니다. 또한 성서는 경제정의란 보다 많이 얻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갖지 못한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공동체에서 배제하려는 경향을 경계하도록 가르칩니다.

경제위기가 심화되면서 가족이 삶의 안전을 보장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돈을 더 많이 벌거나 안전한 직장을 갖지 못하게 하는 세상에서 사람들이 맺는 원초적인 관계 속에서 삶의 안전을 구하고자 합니다. 경제위기 속에서 가족주의가 강화되고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관계의 단절이 일상화된 세상에서 가족은 일종의 고립된 섬이 될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요. 가족의 안과 밖에서 사람들이 맺는 관계는 언제나 같지 않습니다. 가족주의가 가족의 안과 바깥을 단절시키는 확대된 이기주의가 된다면 이는 사람들 사이의 공생과 상생을 모색하는 노력과 거리가 먼 일입니다.

벼룩시장에서 만난 독일가족에게서 배운 것도 경제적 자존감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