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있는 시애틀은 살기 좋은 곳이라고 소문난 곳이다. 그러나 사실은 1년 중 3 - 4개월만 날씨가 아주 좋고 나머지는 비만 많이 오는 곳이므로 비를 싫어하는 사람이나 신경통이 있는 사람들은 애리조나나 라스베가스로 이사 가는 일이 종종 있다. 그러나 비가 많아 나무들이 잘 자라서 눈이 가는 곳마다 푸르르 청청하여 ‘에버그린 스테이트’라고도 한다.

맑은 어느 토요일, 남편과 나는 늦은 출근을 위해 문을 나선다. 향긋한 자연의 냄새... 윙윙 벌꿀들의 일하는 소리, 워싱턴주의 꽃이라는 “로더댄드론”의 주먹보다 더 큰 붉은 꽃들이 뭉게구름처럼 피어있다. 잔디위로 포르릉 하고 이름모를 초록색의 새 한마리가 날다가 다시 주저앉는다. 다소곳한 꼬마 새, 수줍고 대견하다.

오, 모든 자연이 숨쉬고 있구나, 특별한 감동이 온다. 남편은 운전대를 익숙하게 잡는다. 산책 중인 듯 점잖은 노부부가 손을 잡고 가다 싱긋 웃으며 손을 흔든다. 나도 마주 흔든다. 죽죽 잘 생긴 나무들을 바라보며 탁하고 라디오를 켠다. 토요일 마다 목사님의 설교가 나오는데..... “아무개 목사님이 설교하십니다. 은혜 많이 받으십시오.” 갑자기 걸걸한 목사의 목소리, “다- 나를 따라하세요.” “아- 좋다.” “아- 좋다.” 회중이 따라한다. “성령을 받으면 돈이 온다.” “성령을 받으면 돈이 온다.” 또 따라한다. 남편과 나는 동시에 똥그래진 눈으로 쳐다본다. 목사의 설명, “그렇다면 왜 기독교인이 아닌데도 부자로 사느냐? 하나님께서 돈을 가지고 오셨는데, 신자는 신자인데 성령을 못 받았으면 안 믿는 사람들에게 줍니다. 그래서 그들이 부자입니다. 여러분! 기적을 믿습니까? 왜 나에게 기적이 안 옵니까? 기도합시다. 기적은 있습니다. 기적을 달라고 기도합시다.” 탁 하고 남편이 라디오 스위치를 FM으로 돌린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은은히 퍼진다. 그 목사의 설교는 기분을 나쁘게 하고 베토벤은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준다.

한때, 우리는 교회 일로 방황한 적이 있었다. 우리가 나가던 작고 가족적인 교회에서 아주 좋아하는 목사님을 모셔와 이상적인 교회를 만든다고 들떠 있다가 좌절한 경험 때문이다. 그 시절 메말라 가는 신앙생활에 불을 지피고 싶어서 집회마다 기웃거려 보기도 하고 부흥회에도 찾아 다녀 보기도 하였다. 오랜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이웃 교회에 좋은 부흥사가 왔다고 하여 기대를 갖고 참석을 하였는데, 지금도 이때의 경험을 쓸까, 말까 망설이고 있지만 나의 고발정신은 참지 못한다. 청량리 무슨 교회에서 온 목사는 풍채가 좋고 위엄도 있어 보였다. 그런데 설교는 점점 듣기가 거북해 진다. 좀 기다리면 괜찮겠지... 하며 참고 들어본다. 아기를 못 낳은 부자 여신도에게 기도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너무 기뻐서 많은 돈을 주었단다. “얼마인지 아세요?” 하며 손바닥을 좍- 펴 보인다. 펄럭펄럭 소리 내며 돈 세는 모습을 보여준다. “나는 목사 직업이 너무 좋습니다. 돈을 세는 것도 너무 좋습니다. 시퍼런 돈으로 오래 오래 세는 것이 좋습니다.” 남편은 어느새 성경, 찬송을 챙겨든다. “도저히 안 되겠어, 나가자.” 하며 벌떡 일어나 뚜벅뚜벅 걸어 나간다. “이 마귀들아, 게 섣거라.”할 것 같아 조마조마하며 나도 뒤 따른다. 만약 우리보고 나간다고 야단치면, “당신, 강단에서 내려와 구두장사해서 돈이나 버시오.” (‘오, 하나님’ 이라는 영화에서 주인공이 부흥사에게 구두장사나 하라고 부르짖으며 끌려 나가는 장면이 있다.) 라고 말 하려고 단단히 마음을 먹었었다. 두근두근 가슴이 아프다 못해 눈물이 나 오려고 하였다. 얼마 후 부흥회를 했던 그 교회의 담임목사가 서울 청량리 무슨 교회에 부흥회 인도 차 갔다는 말을 들었다. 이런 목사도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한 치의 거짓이 없는 이 이야기들은 사실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이곳에 이런 목사들만이 오는 것은 아니다. 이 시대에 꼭 필요한 말씀을 주시는 존경하고 싶은 훌륭한 목사들도 많이 오시기에 크게 실망하지 않는다.

이렇게 한 동안 안정을 못 찾고 서울에서의 모든 것들과 즐겁게 교회생활 하던 과거만 그리워하던 시절에 ‘햇순’은 큰 위로가 되었다. 목마른 나무에 촉촉이 비가 내리듯, 바삭거리는 우리의 심령에 단비를 주었고 새로운 눈을 뜨게 해 주었다. 햇순을 받아보는 기쁨은 또 있다. 공동체성서연구원에서 일하고, 글 쓰고, 사역하는 분들을 우리가 좋아하기 때문이다. 목사님들도, YWCA 선배들도, 그리고 35년 지기 친구도 있다. 햇순을 받아 재미있게 읽으며 깨닫고, 눈뜨고, 때론 부끄러워하며 그곳과의 끈끈한 친밀감 때문에(물론 나 혼자만의 감정) 충만한 기쁨을 느끼곤 한다. 햇순 22호에는 이곳을 방문 중이셨던 김영운 목사님의 명령(?)으로 짧은 글을 썼었는데, 어느새 100호가 되었다니... 지나온 세월의 피나는 노력과 수고와 사랑에 그리고 가르침에 깊은 감사와 함께 축하를 보낸다.

햇순은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우리에게 넓은 세상을 볼 수 있게 해 주었고 옳게 사는 삶이 어떤 것이라는 것도 가르쳐 주었다. 햇순에 글을 쓰는 사람들을 통해 주를 위한 삶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우리와 틀리다고 방방 뛰지 말 것도 깨닫게 해 준다. 사람들의 생각, 능력, 이해하는 것들이 서로 다르다는 것도 인정해야 하고 그와 동시에 나를 바로 알아보는 방법도 햇순을 통해 배우고 있다.

졸졸 흐르는 시냇물소리, 나무들의 속삭임, 꽃들의 숨소리, 새들의 노래 소리, 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통해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노라니 내가 중증 환자였음을 깨닫는다.

삶 전체를 평화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우리들이지만 세계 각 처에서 햇순을 사랑하는 친구들과 함께 시애틀 북쪽의 한 모퉁이에서, 나그네의 메마른 그루터기에 움트는 햇순을 더 크게 키우고 싶다.

건강한 세상을 추구하며... 건강한 영혼을 간직하고 싶어 하며... 빨리 햇순 100호!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