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비가 죽죽내리는 오늘. 고작 일년 만들어 본 햇순에 대한 회상 한번하자. 햇순을 편하게 집에서 받아 보는 사람들은 알랑가? 햇순이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손길이 닿는지를! 그 중 젤로 중요한 손길은 맨 마지막 작업이다. 덕지덕지 모여 앉아 하는 우편작업, 그 많은 햇순들을 사무실이 있는 4층에서 1층으로 낑낑 옮기고, (참고로 지금은 건물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나서 게다가 인간의 힘으로 직접 옮긴단다) 차에 실어서 우체국에 낑낑 내리고 부치는 과정이다. 그 과정을 모두 마치고 돌아오는 길, 가슴속에 번지는 희열! 안해 본 사람은 모른다. 좀 더 햇순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 꼭지마다의 소중한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그 이야기들에 대해서는 다른 실무자분들이 다루어줄 것을 믿고 나는 나에게 인상적이었던 인물 몇에 관하여서만 떠들고 말 생각이다.

인물 하나. 두꺼비

철저하게 교회력에 따라 삶이 이동한다. 세상이 세상의 조건으로 흐르는 시간을 잡으려 바둥거릴 때 그는 예수의 일생을 따라 의식을 집중시킨다. 그래서 세상보다 세상을 더 먼저 볼 수 있는 것이고 세상보다 더 위에서 볼 수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두꺼비의 아침은 절절한 생명력을 지니고 탄생한 아기 예수를 기다리는 대림으로부터 시작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과 고난을 반드시 거쳐야 하는 예수의 부활로 하루를 마감한다. 하여 우리네 사는 꼴을 분석하고 정의로운 대안을 마련해내는 것도 예수의 인생곡선과 맞닿아있다. 그것이 고스란히 햇순에 담기는 것이다.

인물 둘. 좁쌀

그녀는 언제나 사람을 만난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아픈 사람들은 좀 덜 아픈 사람과 연결해주고 우울한 사람들은 행복에 젖은 사람들과 엮어버린다. 어제는 어린이들과 놀이동산에 가서 솜사탕을 먹고 오늘은 노친네들을 떼거지로 몰고 찜질방에 간다. 그녀의 모든 움직임의 근본목적은 그들에게 사랑을 알게 하고 그들을 행복하게 하려는 것이다. 창조주의 본래 목적을 잃어버리고 살았던 것을 깨닫는 것이 진정한 회개라고 이야기하는 좁쌀의 움직임. 그것이 고스란히 햇순에 담기는 것이다.

인물 셋. 평화돌이

언제나 웃고 있다. 그는 맛있는 음식을 나눌 때의 즐거움을 안다. 모여서 뭐라도 해보려는 사람들을 어떻게 잘 도와줄 수 있을까 고민한다. 아픔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마음을 열고 자신을 불쌍히 여겨주고 용서하라는 이야기도 서슴치 않고 전하는 눈물많은 평화돌이는 스스로의 인생의 최대과제를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이들에게 진짜로 예수가 한 이야기를 잘 전할 수 있을까?”로 정한 것 같다. 아마 모르긴 해도 이건 나의 생각이 맞을 것 같다. 놀랍도록 해박한 그의 성경지식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온 몸으로, 온 몸에서 영혼으로 사랑이 되어 번진다. 그것이 고스란히 햇순에 담기는 것이다.

인물 넷. 이야기꾼

갑자기 내 가슴속에서 동화 하나가 떠오른다. 어릴 적 내 상태를 반짝반짝 기억나게 하는 이야기. 그 중에서도 내가 정말 잊을 수 없는 이야긴 이것이다. 허구헌날 달리기 꼴지만 하는 똥장사가 다음 팀이 뒤에 달려오는 친구들을 보면서 지가 일등인줄 알았다는. 지가 꼴지라는 것을 알았을 때 할머니가 이렇게 이야기 했다지. “천천히 가그라. 꼴찌두 괜찮여. 서둘다 자빠지면 너만 다쳐. 암만 늦게 가두 네 몫은 있능겨. 앞서 간 애들이 다 골라 간 것 같아두, 남은 네 몫이 의외루 실속 있을 수 있능겨. 잉규야!” 천천히 가는 것, 어린아이같이 사는 것, 그것을 예쁜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마음, 그것이 고스란히 햇순에 담기는 것이다.

내가 보기엔 햇순은 이런 것이다. 이런 햇순이 성공회교회들 책상 위에 놓인 걸 우연히 봤을 때 난 기분이 좋아진다. 햇순이 자라 푸른 빛을 발하며 비와 바람을 맞으며 나무가 되고 그 푸른 빛이 또 옆나무가 되고 온 산이 푸른 빛이 될 때까지 햇순은 아주 자~알 자랄 것이다, 암 그렇고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