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에 새들은 이미 그림자도 없다. 새장까지 없어진지 오래다. 삼촌이 들고 가버린 것이다. 새집에 갖다 팔 수도 없고, 민영이네 갖다 줄 수도 없었다. 새집에 갖다 팔자니 민영이 보기가 안됐고, 민영이네 되돌려주자니 그 또한 못할 일이었다. 잃어버린 새 때문이었다. 죽은 아기새 때문이었다.
“이렇게 할 수도 없고, 저렇게 할 수도 없으면 내게 맡겨라.”
삼촌은 새장을 들고 일어서며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민영이가 새 얘길 꺼내면 어쩌지?”
경일이가 이런 걱정을 하고 있을 때도 경완이는 눈물이 먼저 나왔다. 그리고 도배 얘기가 나왔을 때도 맨 처음 떠오른 게 아기새였다. 경완이는 다시 눈앞이 흐려 와 필통을 떨어뜨리기도 했다.
지물포 할아버지가 도배하는 아저씨와 함께 도착한 것은 열한 시가 가까워서였다. 경완이는 가슴이 철렁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도배하는 아저씨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초인종이 울리고, 문이 열리고, 나무 의자와 도배지와 다른 물건들을 한아름 들고 그들이 들어섰을 때, 경완이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경완아!”
엄마가 부르셨다.
“네!”
“비가 오니?”
“네, 조금요.”
“어서 학교 가야지.”
“네, 조금 더 있다가요!”
경완이는 망설이고 있었다. 아기새가 나올텐데, 아기새의 시체가 어디선가 나올텐데. 그걸 내가 보아야 하는데, 그걸 내가 묻어주어야 되는데….
“경완아!”
엄마가 다시 부르셨다.
“네?”
“학교 안 가니? 지각하겠다.”
“네…그런데…저….”
경완이는 여전히 망설이고 있었다. 학교 가기 전에 책장을 옮길 것 같지는 않았다. 아저씨는 아저씨는 도배지를 펴 놓고 마름질을 하고 있었다.
“아기새가 나오면 뒀다 줘야 해.”
경완이는 이 말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기새가 아니었다. 죽은 새였다.
“죽은 새가 나오면 뒀다 줘야 해.”
도배하는 아저씨가 웃을 노릇이었다. 엄마도 마찬가지일 것만 같았다.
“그깐 놈의 죽은 새는 뭐할래, 구워 먹으려구?”
아저씨가 들으면 이렇게 대꾸할 것 같았다.
“무슨 사내 녀석이 저 모양이람, 어서 학교나 가!”
엄마한테 말해도 마찬가지일 것 같았다. 경완이는 그래서 오도가도 못하고 서 있었다. 똥 마려운 강아지 모양으로 서성이고 있었다. 그때였다.
"사모님, 이건 버려야겠죠?"
지물포 할아버지가 장식장 위에서 화분을 내리며 말씀하였다.
"아이구, 바짝 말라버렸군요."
엄마가 말씀하셨다. 경완이는 엄마가 받아 든 화분을 보았다. 고구마순이 축 늘어져 있었다.
"엄마, 그거 절 주세요."
경완이가 말했다.
"넌 아직두 학교 안 갔니?"
엄마가 눈을 커다랗게 뜨셨다.
"네, 지금 가요."
경완이는 책가방을 메고, 우산을 들고, 화분까지 받쳐 들고 문밖으로 나왔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경완이는 아파트 앞 화단을 파고, 화분 속의 고구마를 쏟아 심었다. 축 늘어진 고구마순이 비를 맞고 있었다. 경완이는 흙 묻은 손을 씻지도 않은 채 툭툭 털고 학교로 향했다.
고구마, 그것은 삼촌이 준 것이었다. 천군사 뒷산에서 삼촌의 이야기를 듣다가, 아기새 때문에 경완이가 울어버린 날, 언덕을 내려오다 집어준 것이었다. 노인정 앞의 오동나무 그늘 밑에서는 때 없이 할아버지들이 놀이를 하고 계셨다. 삼촌이 걸음을 멈추었다. 경일이와 경완이도 걸음을 멈추었다.
"저 할아버지 슬리퍼 좀 봐, 뒤꿈치가 달아난 것을 신고 계셔."
경일이가 지금 막 윷을 던지고 있는 할아버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할아버지는 안경다리가 노끈이야. 다리가 부러졌나 보지?"
경완이가 말판을 들여다보고 있는 할아버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가자!"
삼촌이 일어섰다. 일어서다가 삼촌이 쓰레기장에서 집어든 것이 고구마였다.
쓰레기장에는 여러 개의 고구마가 버려져 있었다. 고구마순을 기르기 위해 땅에 묻었던 것이었다. 순이 나와 잘라 심고 버린 고구마였다. 썩어가고 있는 고구마들 가운데 그 하나가 몇 오라기 새순을 기르며 쓰레기에 반쯤 묻혀 있었던 것이다.
"그걸 뭐해?"
경일이가 물었다.
"살아 있는 것이니 갖다 심자."
삼촌이 말했다. 집에 돌아온 삼촌은 빈 화분을 찾았다. 그리고 놀이터에서 모래를 담아와 거기 심었다. 거기에 물을 주고 베란다에 내놓았다.
"잎이 좀 기운을 차리거든 햇볕에 내놔야 돼. 그리고 가끔은 물도 주고…."
삼촌이 말했다. 그리고 삼촌은 새장을 들고 떠났던 것이다.
고구마순은 곧 기운을 차렸다. 그래서 햇볕에 내놓았다. 이파리가 제법 검푸르게 변하더니, 어느 날 축 늘어져버렸다. 그래서 물을 주고 다시 그늘에 두었다. 그랬더니 다시 기운을 차렸다. 그것을 엄마가 장식장 위에 올려놓았던 것이다. 그리고 까맣게 잊고 있었던 모양이다.
"고구마까지 죽을 뻔했어. 흙에다 묻었으니 살아나겠지…."
경완이는 비오는 창밖을 내다보며 고구마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장경완!"
그때 선생님이 부르셨다.
"……."
"경완아, 선생님이 부르셔!"
옆자리 짝이 소곤댔다.
"넷, 아기새는 죽었지만 고구마는 살아날 거예요!"
엉겁결에 경완이가 큰 소리로 말했다.
"하하하하."
아이들이 모두 웃었다.
"무슨 얘기를 하는 거야, 장경완!"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넷, 딴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선생님."
경완이는 울상이 됐다.
"좋아요, 무슨 생각을 했지요?"
선생님께서 물으셨다.
"선생님, 얘기가 좀 길어요."
"그래요? 그럼 우리들 모두 경완이의 딴 생각을 좀 알아볼까요?"
선생님이 다시 말씀하셨다. "네, 좋아요. 경완이 얘기를 들어요."
아이들이 말했다. 어떤 아이는 손뼉까지 쳤다.
"장경완!"
"넷!"
"이 앞으로 나와서 친구들에게 이야기해 봐요."
선생님께서 웃으시며 말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