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설 모두 끝이 나고 제사 지낼 차례인데 문제 하나 생겼구나. 제사를 지내려면 신위봉안 神位奉安이 우선인데, 예로부터 조상신이 제삿날 오시는데 빨랫줄을 걷지 않으면 그냥 간다 하였구나.
“마땅히 걷어야지. 혼령들 못 오시면 제사 지내나 마나여.”
“아까 저녁때까지 할아버지가 지키시다 손님들 오시면서 나더러 지키라더니, 이제 와 왜 건드리려고 해? 어미 새 놀라 도망가면 어쩌라구.”
아들이 한마디 거드는데
“그동안 전깃줄 전화선 그대로 놔두고 지내왔는데, 빨랫줄 걷는 건 그저 형식에 지나지 않는 일이지요. 자꾸 마음 걸리시면 바지랑대를 더 높여놓기나 하시지요. 제가 훌쩍 들어올리고 올랍니다.”
“그래라. 이왕 봐주는 거 살살 다루려무나.”
할아버지 못 이기는 척 우물우물하고 만다. 이렇게 해서 결국, 바지랑대만 이어 들어올리고 이날 밤 제사 계속된다.
다음 순서 강신 降神이요, 세 번째가 참신 參神이요, 초헌 初獻 독축 讀祝 순서로다. 아헌 亞獻, 종헌 終獻, 삽시 揷匙 후에 합문 閤門 순서 되었구나.
제사상에 병풍 치고 문밖으로 모두 나오는데 마당에는 달빛이 가득, 높이 떠받친 바지랑대 끝에 누비조끼 여전하고, 그 옆에 까마득히 새 한 마리 앉아 있다.
“내가 어렸을 적에 뒷산에 올랐다가 동무들 꾐에 빠져 별 생각하지 않고 산 새 알을 꺼냈다가 아버님, 그러닝게 바로 오늘밤 제사 잡숫는 어르신께 어쩌다 들켜설랑은 다시 갖다 넣었지만 나중에 다시 가보니 그냥 곯아 썩었던지, 뱀이 와서 먹었던지, 다른 새가 먹었던지 겉껍질만 남았더구나. 짐승이라는 게 영물이라 자리를 옮기거나 사람 손이 타고 나면 다시는 그 어미가 알을 품지 않으니 오늘 일은 잘헌 일이다. 조상님네도 아시겄지.”
할아버지 다시 한말씀 하시고
“저놈들 모두 농경지나 강가 모래밭에서 번식하던 놈들이쥬. 공장 짓느라고 농경지가 줄어들고, 강변에 까페 모텔 여기저기 들어서고 살 곳을 잃고 나서 민가로 옮겨든규. 강원돈가 어디선가는 멧돼지까지 내려온대유. 신문에서 봤던가 영화에서 봤던 일인가……”
아들이 또 응수한다.
“이제 그만 들어가자!”
할아버지 기침 세 번, 방문 열고 들어가니 아들 손주 사촌 육촌 뒤따라 들어간다.
계문 啓聞, 헌다 獻茶 다 끝나고 철시 撤匙, 사신 辭神순서로다. 지방과 축문을 불사르니 제사 순서 끝이 나고 음복 飮福 차례 되었구나.
바지랑대 끝에는 여전히 누비조끼, 암컷은 둥지 속에서 알을 품고, 수컷은 여전히 빨랫줄에 앉아 그 밤을 지새운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사는 모습 같아놔서, 그중에도 날짐승이 사람과 같아놔서 저러다 날개 돋으면 둥지를 떠난단다. 품 안에 자식이란 말 있듯이, 다 자라면 어느날 포르르 날아가지……”
“종수 녀석도 훗날 그러겠지요, 어머님?”
할멈이 며느리와 남은 음식 간수하고 달빛 쏟아지는 안마당 내다보며 조곤조곤 얘기한다. 종수 녀석 졸음 못 참고 어느새 어미 무릎에 쓰러져 잠이 들었구나.
한밤중 손주 놈이 오줌 마려운지 일어나고, 할아버지도 잠이 깨어 저놈이 어쩌나 보자 살피는데, 비틀비틀 나와서는 마당가에 오줌 깔기고 살금살금 소리 죽여 바지랑대로 다가서다
“엇험!” 할아버지 문 여는 소리에 흠짓 놀라 물러서고,
“종수야, 할애비가 내일 아침 보여주마.”
“할아버지, 약속 꼭 지킬 거지?”


아침

이 녀석들 늦잠자네, 깨우지 말고 그냥 두고 할멈과 며느리는 느지막이 아침밥 짓고 제사음식 따끈히 덥혀 아침상을 차리는구나.
“할어버지, 보여줘요. 새알 어서 보여줘요.”
손주 손녀 밥상머리에서 자꾸만 졸라댄다.
“오냐, 걱정마라. 할애비가 거짓말허겠느냐.”
할아버지 수저 놓고 마당으로 우물쭈물 손주 손녀 따라나와 바지랑대 둘러선다.
“엄마 아빠 나오셔요, 할머니도 나오셔요.”
할아버지 살금살금 바지랑대 내리신다. 밤새워 둥지 지키던 수컷이 날아오르고, 바지랑대 내리는데도 어미는 그냥 있었던지 바지랑대 다 내리자 어미도 그만 날아오르고, 빨랫줄 낮게 내리자 둥지 속이 다 보인다.
“세상에!”
“어쩌면!”
“간밤에 새낄 깠네!”
“올챙이 같다, 오물오물……”
“아냐, 아기 햄스터 같애. 그치?”
“그래, 너희들도 맨 처음 어미 뱃속에서 나왔을 때, 꼭 이 모양 같았느니라. 이렇다가 날개 나고 제 모습 다 갖추면, 시방 너희들같이 요렇게 이뻐지는 것이구먼.”
할멈과 며느리 눈시울이 붉어지고, 어미 아비 새 머리 위에서 날개 치며 딱딱거린다.
“이제 그만 올려주자.”
“그래요, 할아버지 어서 올려주세요.”(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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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신위봉안 神位奉安 : 제상 위에 신주나 지방을 모신다. 돌아가신 분 사진을 놓기도 한다.
3) 강신 降神 : 향을 피우고 제주가 술잔을 받아 모사 위에 세 번 나누어 붓는다. 신을 부르는 행위이다.
4) 참신 參神 : 참석자 모두가 두 번 절한다. 신에게 인사하는 순서이다.
5) 초헌 初獻 : 제주가 첫 번째 술잔을 올리고 축문을 읽는다.
6) 독축 讀祝 : 축관이 축문을 읽는다. 읽고 나면 두 번 절한다.
7) 아헌 亞獻 : 두 번째 술잔을 올리고, 올린 사람만 두 번 절한다.
8) 종헌 終獻 : 마지막 술잔을 올린다.
9) 삽시 揷匙 : 숟가락을 메어 꽂고 젓가락을 바르게 놓는다.
10) 합문 閤門 : 식사하도록 물러나와 문을 닫는다.
11) 계문 啓聞 : 어른이 기침하고 문을 열면 모두 방안으로 들어간다.
12) 헌다 獻茶 : 갱을 내리고, 숭늉을 오려 메를 세 숟가락 떠 물에 만 다음 모두 엎드린다.
13) 철시 撤匙 : 숭늉 그릇에 놓인 수저를 거두고 메 뚜껑을 덮는다.
14) 사신 辭神 : 신을 보내는 인사로 모두 두 번 절을 한다.
15) 음복 飮福 : 제사를 다 지내고 조상이 남겨준 음식을 자손들이 나누어 먹는다. 이 음식을 먹으면 복이 있다 하여 친족은 물론 이웃집에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