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계속 쉬고 있었다. 교실에도 운동장에도 군인들이었다. 국기 게양대에는 붉은 별이 찍힌 깃발이 나부꼈다. 우리는 감나무 밑에서 의사놀이를 했다.
나는 안경을 썼다. 수수깡으로 만든 거였다. 안경다리가 헐거워져 자꾸만 콧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고갤 쳐들면 꼭대기 가지 끝에 붉고 투명한 감이 몇 개 보였다.
순덕이는 섬에서처럼 누워있다. 누운 채 치마허리를 내렸다. 까맣게 때 낀 배꼽이 보였다. 내가 순덕이 명치 아래를 여기저기 눌러본다.
“이 동네 이사 와서 물지게 처음 졌을 때는 가슴이 찢어지는 줄 알았어유.”
순덕이가 연극 투로 말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이 동네는, 젖만 떨어지면 물지게를 진다는 말이 있지요.”
나도 의사같이 말한다.
“가끔 아랫배가 아프구만유.”
“여기?”
“그 아래.”
“여기?”
“더 아래.”
“여기?”
“그 밑에. 더…….”
“예끼 놈들!”
지겔 지고 지나가던 허리 꾸부정한 노인이 작대기로 땅바닥을 딱, 쳤다. 내 콧잔등에서 수수깡 안경이 떨어지고 순덕이가 치마허리를 올리며 발딱 일어나 앉았다. 철석! 바람도 불지 않는데 감히 한 개 떨어졌다. 멋쩍던 차 잘됐다 싶어 뛰어가 떨어진 감을 찾았는데 꼭지 빠진 겉무른 홍시였다.
“예잇 퉤, 벌레 먹은 거!”
“그러니까 떨어지지.”
“의사놀이 계속 해?”
내가 물었다.
“집에 가 봐야지. 또냄이가 깼을 거야.”
순덕이가 서둘러 일어선다.
“같이 가.”
둠벙물은 뽀글뽀글 거품을 내며 썩고 있다.
“자꾸 푸른 똥만 싼단다. 아마 죽을래나 봐.”
순덕이가 또남이 코구멍에 붙어있는 파리를 쫓으며 어른투로 말했다. 커다란 코딱지가 코구멍을 막고 있어 아기는 입으로 숨을 불며 잠들어 있다.
“약은 먹였남?”
나도 어른처럼 묻는다.
“약은 무슨 약!”
순덕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꾸하며 문 밖으로 휑하니 나갔다. 나는 어떻게 하면 저 코딱지를 빼낼 수 있을까, 생각했다.
“뭘 그렇게 들여다 보니? 이거나 씹어 봐.”
어느새 순덕이가 방안에 들어와 있다.
“창고 옆에서 훑어 온 거야. 꼭꼭 씹다가 침을 자꾸 뱉어내면 끔이 되거든”
햇밀이었다. 나는 순덕이가 건네 준 한웅큼의 밀알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씹기 시작했다. 입 안에 고이는 비릿하고 텁텁한 뜨물을 토방에 내뱉곤 했다.
“퉤, 자꾸 퉤!”
“알았어, 퉤!”
“이제 꺼내 봐.”
“벌써?”
“그래도 한 번.”
입안의 것을 꺼낸다. 느른하다
“늘여 봐.”
“아직 이런 걸?”
“길게 늘여 봐.”
“얼라. 늘여지네.”
“그래, 그게 끔야. 끔이 뭐 별거니?”
순덕이는 손가락으로 잡아 늘이던 것을 다시 입안에 넣고 씹기 시작했다. 나도 손가락에 묻은 묽은 밀가루 풀 같은 걸 핥아 씹으려다 그만 구역질이 나 토방에 내뱉고 말았다. 미군 비행기가 떨어뜨린 종이상자 속에 들어있던 바둑알같은 미제 껌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에이 재미없다. 양초 토막이라도 있으면 존데.”
“양초?”
“응. 양초를 씹으면 끔이 되거든.”
“가져올까? 제사 때 쓰던 것 집에 있는데. 참 너는 아는 것도 많다.”
“아니 그냥, 그냥 두고 이리 와 봐.”
순덕이가 조심조심 토방으로 내려선다.
“왜? 어디?”
나도 자석에라도 끌리듯 토방으로 내려선다. 순덕이가 보릿짚대가 쌓인 헛간으로 들어간다.
“거기, 뭐 있어?”
“아니.”
“달걀?”
“아니, 그냥!”
순덕이가 보릿짚대 위에 눕는다.
“병원놀이?”
내가 묻는데 순덕이 두 눈이 갑자기 똥그래진다.
“엄니 오내벼.”
순덕이는 어느새 방안에 들어가 있다. 그리고 무릎에 또남이를 안고 앉아 노랠 부르기 시작했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나도 어느새 방안에 들어와 있다. 숙제장을 꺼내놓고 구구단을 옮겨쓰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