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저문다.
노을이 잠긴다.
저녁 밥상에 애기가 없다.
애기 앉던 방석에 한 쌍의 은수저
은수저 끝에 눈물이 고인다.

한밤중에 바람이 분다.
바람 속에서 애기가 웃는다.
애기는 방 속을 들여다본다.
들창을 열었다 다시 닫는다.

먼 들길을 애기가 간다.
맨발 벗은 애기가 울면서 간다.
불러도 대답이 없다.
그림자마저 아른거린다.

어느 날 국어선생님이 칠판에 적어주신 시다. 김광균의 <은수저>라고 했다. 나는 날아가고 있다. 남태평양 깊은 바다 속 온갖 빛깔의 산호초사이, 갖가지 모양새의 유영하는 고기떼처럼, 어느 날 죽은 나는 살아 있는 새처럼 날고 있다. 애기는 먼 들길을 간다했는데, 나는 허공을 날아가고 있다. 이제 보니 맨발이다. 신발은 어디 두었을까. 아스팔트, 그 포장도로 어디 벗겨졌겠지.
새들이 난다. 뻐꾸기, 독수리, 황조롱이 난다. 올빼미도 날고 부엉이도 난다. 참새, 제비, 까마귀가 날고 어치, 물까치도 난다. 물총새, 갈매기, 가마우지가 날고 따오기, 황새, 카나리아가 난다. 꿩이 날고 종다리도 보인다. 멧새, 쇠개개비, 방울새도 보이고 진홍가슴새, 오목눈이, 검은딱새도 보인다. 진박새, 검은지빠귀, 꾀꼬리, 휘바람새여 어디로 가는가. 찌르레기, 후투티, 딱따구리, 개똥지빠귀, 도요새여 어디로 가느냐?
세상에, 곰이 난다. 반달가슴곰, 불곰도 난다. 호랑이, 토끼, 쥐들도 함께 난다. 밭쥐, 등줄쥐, 생쥐, 멧밭쥐, 다람쥐, 하늘다람쥐가 날고 청설모, 날다람쥐도 난다. 두더지도 난다.
사슴, 산양, 사향노루가 날고 멧돼지, 고라니, 족제비가 난다. 수달이며 늑대며 여우, 표범도 날고 너구리, 살쾡이, 고슴도치도 난다. 스라소니, 오소리, 박쥐가 날고 관박쥐, 애기박쥐, 집박쥐, 검은토끼박쥐, 박쥐란 박쥐는 모두 함께 난다.
판다도 난다. 코끼리, 낙타, 사자도 간다. 기린, 얼룩말, 코뿔소도 난다. 일런드, 임팔라, 치타, 하이에나, 재규어도 사이좋게 난다. 들소떼, 캥거루들도 함께 난다.
뱀도 난다. 구렁이, 살모사 모두 난다. 도마뱀도 난다. 카멜레온, 코모도왕도마뱀, 날도마뱀도 난다. 육지이구아나, 바다이구아나, 모두 난다. 목도리도마뱀, 갑옷도마뱁, 발없는도마뱀, 뿔도마뱀 모두모두 난다. 아나콘다, 보아구렁이, 비단뱀, 방울뱀, 코브라도 난다.
소도 날고 말도 난다. 돼지도 난다. 요크셔, 버크셔, 햄프셔, 제주도똥돼지도 난다. 염소도 날고 면양도 날고 토끼도 난다.
개들도 난다. 삽살개, 복서, 세인트버나드, 불도그, 콜리, 셰퍼드, 닥스훈트, 비글, 세터, 포인터, 파비용도 보인다.
고기도 난다. 바다사자도 날고 바다코끼리도 난다. 물개, 바다표범, 고래들도 난다. 흰긴수염고래, 참고래, 쇠고래도 난다. 아마존강돌고래, 흰줄박이 동고래, 향유고래도 난다. 버들치도 난다.
청개구리, 참개구리, 두꺼비도 날고 붕어, 가물치, 열목어도 난다. 은어가 날고, 영어가 날고 뱀장어도 난다. 뱅어같이 투명하게 형체만 남아난다. 잉어도 메기도 새우도 난다. 콩게, 방게, 농게가 날고 등푸른 고등어도 날아간다. 새털같이 가벼워진 몸으로 모두모두 날아간다. 모두모두 새처럼 날아간다.
저애들은 누구지? 그런데 어떻게 된 거지?
피를 흘리고 있잖아? 그런데 왜 날 따라오지?
그렇구나, 저 바퀴자국! 찻길을 건너다 바퀴에 치었구나. 찻길을 가다가 차에 치인 녀석들이야. 개도 있네, 개가 어쩌다 차에 칠 수 있지? 하긴 비둘기도 친다니까. 부둣가 하역장에서 흩어진 낱알을 줍다보니 디룩디룩 살만쪄서 날질 못한대나. 그래서 지나가는 자동차도 피하지 못하고 치어죽는대나 어쩐대나.
그런데 저건 진돗개 같은 걸? 아냐, 풍산개 같기도 해. 그렇다면 더군다나 이상하잖아? 진돗개, 풍산개는 우리나라 명견인데, 그런데 어떻게 차에 치일 수 있지?
물어보지 뭐. 그래, 물어보면 될 걸 가지고 괜히. 마침 이쪽으로 오고 있군. 그런데, 저건 뭐야? 세상에 앞을 못보잖아? 그런데 저건 또 뭐야? 귀에 별을 달았잖아? 웃기는군. 하기야 나도 귀를 뚫었으니까 할 말은 없지 뭐. 그렇지만 개까지 귀를 뚫다니, 이건 너무한 거 아냐? 거기다 별은 또 뭐야, 군견? 그렇다면 계급장? 아무리 그렇다해도 별은 너무하잖아? 진짜 웃겼어. 그러고 보니 나도 집에 강아지 한 마리 두고 왔네. 녀석에게도 귀고리를 해주고 싶었는데. 그러고보니 진짜 할말 없네 뭐.
“얘, 넌 누구니?”
“…….”
대꾸가 없다. 분명히 이쪽으로 오고 있었고, 내 목소릴 들을만한 거리였는데 별단개는 아무 대꾸가 없다. 표정의 변화는 없고 그냥 날고 있었다. 이쪽으로 오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방향을 튼 거였다. 아래쪽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쇳소리와 북소리 간간이 노랫소리도 섞여있었다.(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