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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요, 막 태어났을 때 눈도 뜨지 못하는 강아지였어요. 아주 작고, 엄마 품에서, 함께 태어난 강아지와 앞 다투어 엄마 젖을 찾아 이리저리 기어 다녔어요. 주인 집 마루 밑 이었지요….”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그런데 그게 바로 별 단 개 목소리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러나 별 단 개는 보이지 않고, 무대에 세운 인형극 무대엔 정말 강아지 두 마리가 보였어요. 어미 개두요.
무대 위에 세워진 인형극 무대는 참 이상한 무대였어요. 어쩌다 보면 관객인 우리, 그러니까 미미언니와 내가 거기 무대 위 등장인물이 되어 울고 웃는 것이었어요. 때로는 어미 개와 내가 그 집 마루 밑에 들어가 있기도 했어요. 내가 강아지가 되어서요. 그런 나를 미미언니는 관람석에서 바라보고 있어요.
무대 전체가, 그러니까 그 집 전체가 무대가 되기도 했어요. 사립문이 비스듬히 열려있고 울타리는 수수깡바자예요. 안마당으로 들어서면 마루 밑 거기 어미 개와 강아지가 있어요. 그 위가 대청마루, 방문은 여닫이로 정면에 보여요. 방문을 열면 장판방, 뒷문을 열면, 그래요, 그 방의 뒷문을 열면 글쎄 거기 푸른 바다가 쏴아 철퍽 펼쳐져요. 이따금 통통배가 지나가요. 갈,갈,갈 갈매기도 날아요.
눈높이로 수평선이 떠 있다가 빗줄기, 비가 글쎄 빗살무늬로 네모진 방문 밖을 가득 채워요. 그러다가 우르릉, 저 멀리 바다가 뒤틀리면서 용오름현상이 나타나기도 해요. 이 모든 장면이 줌렌즈처럼 다가오고 멀어지다 그래서 희미하게 넓어지다가 다시 좁아지면서 뚜렷하게 윤곽이 드러나요.

노래소리가 들려와요.
방문에 낭자머리의 그림자가 보여요.
그 그림자가 노래했어요.

세상살이 내맘대로
된다면야 어찌 좋지 않으랴만
기믹히다 요내신세
이팔청춘 젊은 나이
이별이란 웬말인가,
난리통에 남편잃고
천방지축 헤메다가
어쩌다가 얻은 새끼
뒤늦게사 주은 자식
무남독녀 심청같이
진자리 마른자리
이리저리 옮겨 놓고
눕혀놓고 바라보고
앉혀놓고 짝짝궁
조게캐 미역따다
맛난음식 해먹이고
모시심고 누에키워
제길로 키워놓자
어미사랑 모를세라
제맘대로 들고난다
오늘은 또 어디가서
얼마있다 돌아올까
천지신명 용왕님네
칠성님 조상님께
두손 모아 비옵나니
우리 딸자식 보살피사
성한 몸으로 보내주소
하느님께 비옵나니……

안방 여닫이 문, 창호지에 어릿대는 그림자 낭자머리, 안주인댁 기도한다. 조아리며 기도한다. 두손합장 기도한다. 울며불며 기도한다.
그때 사립문쪽에서 인기척, 어미 개 귀를 세운다.
조심스런 발자욱소리, 그러나 어미 개 짖지않고, 사랍문쪽에 나타나는 긴 그림자, 보퉁이 안고 묶은 머리채, 드디어 주인집 따님 안마당으로 들어서고, 어미 개 다가오더니 반갑게 뛰어오른다.(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