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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눈보라에 휩싸이는 무대,
달빛 꺼진 어둠 속 바람소리, 마루 끝에 놓였던 함석대야 구르는 소리
어머니의 기도소리……

……울애기 어디메서
헐벗고 굶주리는가.
배부르고 등따습게
지내다가 돌아오게
용왕님네 칠성님네
두손모아 비옵나니……

따님, 어미 개 안고 마루 밑으로 들어간다.
어미개 주인아씨 얼굴을 핥아준다.
아씨, 어미개 어루만지며 숨죽여 흐느낀다.
어머니 기도소리 점점 커지고,
참아 누르던 울음 터뜨리는 주인아씨.
엄마!
부르는 소리에 안방문이 열리고,
아가!
부르는 소리에 마루 아래서 기어나오는 딸.
모녀가 끌어안고 안방으로 들어선다.
윗목에 차려놓은 따님의 밥상,
아랫목 이불 밑에 묻어둔 밥그릇 ! 엄마가 꺼내들고
아씨 노래한다.

엄마, 엄마, 이제 안 가
아무데도 안갈테야.

아니구나, 곱게 컸으니
시집을랑 가야허지
좋은 신랑 잘난 남정네
골라만나 살아야지
그래야 소원풀지
이 에미 한을 풀지
사랑스런 내 강아지……

무대, 뒷문 밖으로 복숭아 꽃잎 날리고, 소나기 그치자 매미소리, 수평선과 맞닿은 하늘에 고추잠자리 날더니, 눈보라 몰아치다 멈추고 노오란 달빛 다시 안마당에 가득하다.

기박허다 요내 신세
무남독녀 심청같이
삼단같은 머리채
무청같이 키워내서
대처살이 보냈더니
양색시가 웬말인가,
내 혼자서 살다죽지
내 눈 앞에 뵈지마라
다시는 오지마라……
(안주인댁, 안마당에서 연탄불을 피운다.)
기박허다 요내신세
이팔청춘 서방 잃고
주운자식 키워내서
손주불알 바랐더니
세상만사 허사로다
더살아 무엇할꼬
무슨영화 본단말가
이 밤내 이냥 가불면
우리 영감 알아볼까
두눈이 진물러서
앞도뒤도 안보이네……

주인마님, 소복에 풀어헤친 흰 머리칼 얌전히 매만지고, 벌겋게 타오르는 연탄화덕 번쩍들고 방안으로 들어선다.
(방문을 닫았는데도 방안 풍경이 다보인다.)
요 위에 반듯하게 누운 마님, 머리맡에서 연탄불만 활활탄다.
파도 소리, 쏴아 철석!
갈매기 울음소리, 갈, 갈, 갈!
방문 밖에서 어쩔 줄 모르고 서성이는 어미개, 달빛깔린 마당 안엔 아무것도 모르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강아지들…….(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