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한 남자 아이가 조심스레
손을 내민다
‘가방을 들어줄까?’ 하는 것 같다
여자 아이 고갤 흔든다
고갤 흔들고 나서 몇 걸음 옮기더니
이번엔 자청해 가방을 벗어 준다
‘그래, 도와줘. 도와줘서 고마워.’
하는 것 같다
‘아까부터 알고 있었어.
날 도와주는 거.’하는 것 같다
부릉부릉, 정지선엔
여전히 기다리는 운전자들,
누구 한사람,
클랙슨도 울리지 않았다
그렇게 무사히 건널목을 건넌 아이들
사내아이가 가방을 내민다
여자아이가 가방을 받는다
그리고 서로 반대 방향으로
돌아서 간다, 제 갈 길 간다
저만치 가던 사내아이 뒤돌아 본다
붐비는 차 사이로 잘 보이진 않지만
‘잘 가!’
‘고마워’하는 것 같다

삼촌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다.
여자 아이 곁에 백구가
나란히 간다
길 건너 백구가
여자아이와 간다
목 줄 잡혀 끌려간다
다시 보면 흑염소,
개소주집 앞 아스팔트 길
염색한 군용 점퍼 입은
구렛나루 짙은 수염의
우악스런 손길에
다시 보면 백구,
끌려간다.

미미 언니!
알아듣겠어?
그날도 난 국어 선생님한테
이상한 시 배웠어.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죽어간댔어.
이라크에서 방글라데시에서
이북 곳곳에서
아이들 죽어 간댔어.
그러면서 칠판에 적어 주셨어.

아이가 걸어간다
혼자서
어여쁜 꽃신도 함께 간다

이 세상에서 때 묻지 않은
죽음이여
너는 다시 무지개의 七色(칠색)으로
살아나는가

아이가 걸어간다
아이가

한밤중 불같은 머릿속 다 헹구고
간밤의 비바람 폭풍우 다 데리고

오늘은 다소곳이 걸어간다
눈물도 꽃송이도 다 데리고 간다
아가야

네가 남긴 환한 미소
내 가슴에 남겨 준 영롱한 기쁨
그런 것 모두 다 한데 모아

오늘 비 개이고 맑은 언덕
아이가 걸어간다
혼자서
하늘나라로 하늘나라로
무죄의 층계를 밟아 오른다

*김명수 지음. ‘무지개’ 옮겨 적음.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