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뱅이 예술가들이 모여 사는 뉴욕의 뒷골목에 잉꼬부부가 살고 있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자 부부는 서로에게 선물을 하고 싶었다.

아내는 가진 돈을 다 털어 보았지만 선물을 사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자, 고민 끝에 자신의 부드러운 머리칼을 잘라서 가발용으로 팔아야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녀는 그렇게 자신의 머리를 잘라 판돈으로 남편의 시계 줄을 산다.

저녁식사를 준비해 놓고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는, 자신의 짧은 머리를 자꾸만 거울에 비추어 보면서 걱정이 태산이다. 이렇게 흉하게 변해 버린 몰골의 나를 남편은 과연 변함없이 사랑해 줄까?

마침내 집에 들어온 남편은 아내의 짧아진 머리를 보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자신이 기껏 선물로 마련한 거북껍데기 머리핀은 그럼 어쩌란 말인가? 난감해하는 남편을 향해 아내가 말한다.

“여보, 제 머리카락은 셀 수 있을지 몰라도, 당신에 대한 저의 사랑은 셀 수 없을 거예요.”

그러면서 아내는 남편에게 시계 줄을 내민다. 하지만 남편에게는 시계가 이미 없어진 뒤다. 아내에게 줄 머리핀을 사기 위해 시계를 팔아치웠기 때문이다.

“여보, 당신 선물을 사느라 시계를 팔아 버렸소. 하지만 어찌 되었든, 시계 줄은 나중에 꼭 필요하게 될 거요.”

그러면서 남편은 준비한 머리핀을 엉거주춤 내놓는다.

“여보, 제 머리는 금방 자라요.”

머리핀을 받아든 아내의 눈에는 어느 새 눈물이 흐르고, 시계 줄을 든 남편 역시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떠오르곤 하는 단편소설의 대강이다. O. 헨리의 단편소설 <크리스마스 선물>은 가슴의 울림이 있는 사랑의 풍경을 보여준다. 자손에게까지 대물림할 수 있는 부를 쌓고 명예와 권력이 하늘을 찌른다고 할지라도, 가슴으로 주고받는 사랑의 감동이 없다면 그러한 삶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성취를 위해 아무리 분주하게 뛰어다닌다고 한들, 사랑이 없다면 그 가슴은 또 얼마나 쓸쓸하겠는가.

사도 바울이 “천사의 방언을 할지라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징이나 요란한 꽹과리가 될 뿐일 것이다. 온갖 지식을 가지고 있고,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고전 13:2)고 했듯이, 우리 모두가 사랑을 위해서 살고, 사랑에 의해서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그 사랑은 분명 머리의 언어가 아닌 가슴의 언어이다. ‘마인드 투 마인드’ Mind To Mind가 아니라, ‘하트 투 하트’ Heart To Heart이다. 예수께서 인류를 향해 ‘진실로, 진실로’ 호소하셨던 것도 머리로가 아니라 가슴으로였다.

온갖 이해타산과 계산으로 현대인의 머리는 늘 복잡하다. ‘고객 감동주의’라는 성공적인 광고 문구가 상업에까지 등장하여 소비자의 가슴을 이용한 감이 없지 않지만, 그만큼 현대인의 가슴이 쓸쓸하게 비어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비어 있는 가슴을 충만하게 할 뿐만 아니라, 가족 간에, 동료 간에, 친구와 지인들 간에 가슴과 가슴이 통하게 한 것은 무엇이었는지 되돌아보며 한해가 마무리되기를 소원해 본다.

나의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은 무엇인가? 나는 흥분과 기대감으로 인해 밤잠을 설치고 내일을 기다려 본 적이 있는가? 그런 적이 있다면 그 일은 무엇인가? 이해타산과 관계되는 일인가, 가슴과 관련된 일인가?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는 그 누군가가 있는가?

화가를 꿈꾸었지만 각박한 현실 문제로 꿈을 접어야 했던 한 친구는 ‘아직도 24색 크레파스를 볼 때라든가, 아무 것도 칠해지지 않은 하얀 도화지를 볼 때면 가슴이 뛴다.’고 고백하여 나를 감동시킨 적이 있다.

그렇다! 우리는 어떤 모양의 어떤 삶을 살든지 가슴이 살아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현재 이 순간 우리 모두가 처한 이 시대의 현실에서 무엇보다도 시급한 문제는 ‘경제 살리기’가 아니라, ‘가슴 살리기’이다. 아무리 경제가 풍요로워도 식어 버린 가슴, 텅 빈 가슴의 소유자들끼리 모여 사는 세상은 사막과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