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월말, 민주당 박지원 대표가 중국의 차기 지도자 시진핑에게서 들었다는, 이명박 대통령을 “한반도평화 훼방꾼” 이라고 했다는 말로 인해 오가는 말이 험악했습니다. 여당은 박지원 대표를 이적행위, 사대주의라고 비난했고, 박 대표는 자기가 들은 말을 했을 뿐이라고 반격했습니다. 외교부는 박 대표의 발언이 결례라며 중국에 유감을 표하기까지 했습니다. 일이 이렇게 전개된 걸 보면, 박 대표가 한 말의 진위를 떠나 사대주의가 따로 없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바빌론의 식민지가 된 유다 지도층도 그랬습니다. 이들은 친 바빌론파, 친 이집트파로 나뉘어 극단적으로 대립했습니다. 마침 종주국 바빌론이 유다의 명문가 출신 그다랴를 유다의 총리로 지명하자 역시 유다 왕국의 종친인 이스마엘이 그다랴를 살해하고, 유다 왕족의 여인들과 백성들을 인질로 잡아 애굽으로 투항했습니다. 그다랴를 바빌론의 매국노라고 비난했던 자기는 이집트의 매국노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나라가 망한 처지에서도 만신창이로 싸웠던 자들이, 어쩐 일인지 하나님께 살 길을 묻기 위해 예레미야를 찾아옵니다. 물론 다급한 나머지 임시방편으로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여간 간절한 게 아닙니다. “그분의 응답이 좋든지 나쁘든지 간에, 우리가 그 말씀에 순종하려 하기 때문입니다”(렘 42:6). 이들의 말은 역으로 지금까지 자신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웅변하고 있습니다. 듣기 싫은 소리 하는 하나님께 등 돌리고, 듣기 좋은 소리하는 우상과 춤추며 불순종의 길로만 달려왔던 이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죄악의 백성에게 듣기 싫은 소리를 하시는 것일까? 진실하시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상은 그러지 않습니다. 우상은 언제 들어도 고소한 말을 합니다. 물론 고소한 말이 먹히지 않으면 협박해서 굴종시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를 찾아온 백성들은 고소한 말이 아닌 진실을 듣기를 원했습니다. 놀라운 변화입니다. 불순종의 길로만 달려왔던 이들이 비로소 하나님께 순종하겠다는 말을 입에 올린 것입니다.

* 순종은 하나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자기 땅의 가난한 이들과 공감하는 삶으로 나타납니다. 가난한 이들과의 공감은 성서가 말하는 순종하는 삶의 조건이기도 합니다. 머리 좋은 것만으로는 순종의 삶을 살지 못합니다. 사탄도 머리가 좋습니다. 순종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신뢰하는 데서 배양됩니다. 어쩌면 가난한 이들과의 공감능력을 천부적으로 지니신 분은 예수님일 것입니다.

역시 지난 10월, 김황식 국무총리가 노인들을 화나게 했습니다. 모든 노인들에게 지하철 무료승차권을 주는 ‘보편적 복지’는 옳지 않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참 머리 좋은 사람입니다. 일류대학 출신에, 고등고시 합격에, 감사원장을 하고, 한 나라의 총리까지 됐으니 얼마나 머리가 좋겠습니까. 그러나 가난한 이들과의 공감능력은 ‘글쎄’입니다. 이 땅의 노인들이 어떤 처지인지, 서민들이 어떻게 사는지 전혀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발상이 나왔을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의 문제가 그것입니다. 돈 버는 데는 비상한 머리를 지닌 이들. 그러나 가난한 이들과의 공감은 말 그대로 ‘너무나 먼 당신’입니다. 사람을 경제 개념으로만 보지 인격으로 볼 줄 모르는 이들입니다. 산과 강과 바다와 도시와 주택을 돈벌이 수단으로 여길 뿐 인간과의 관계로 대하지 못하는 이들입니다. 제레미 리프킨의 말대로 ‘공감’ 능력이 빈곤한 이들에게 ‘창조의 신비’는 사치스러운 주문일 것입니다.

공부 잘하라고, 아버지에게서 혼난 14세 사내아이가 자기 사는 아파트에 불을 질러 일가족이 타 죽었습니다. 평소 공부 잘한 아이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공부는 잘 했지만 아버지와는 인격적으로 공감하지 못한 데서 일어난 참극입니다. 그의 가장 큰 후견자는 판검사 되라고 공부만 강요했던 아버지입니다. 지금 우리 시대는 가난한 이들과는 전혀 공감을 못하고, 단지 공부만 잘한 사람들이 부자가 되고, 지도층을 형성하고 있는 데서 세상이 팍팍한 게 아닐까요? 그들이 부자인 것이 문제가 아니라, 부자가 돼서도, 자기들끼리는 잘도 공감하면서, 가난한 이들과는 공감하지 못하는 게 문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공감하여 살 길을 찾아 나선 백성들의 말이 새롭게 들립니다. “(주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좋든지 나쁘든지 순종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