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나는 누구일까? 나다운 게 뭘까? 난 뭘 원할까? 내가 하고 싶은 게 뭐지? 내가 진짜로 바라는 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는 어떨 때 기쁘고 행복해지나? 나는 왜 꼭 그런 상황이 되면 화를 못 참는 걸까? 내가 지금 슬픈 건 뭐 때문일까? 난 무얼 두려워하고 있는 거지?’ 우리가 이런 물음의 답을 스스로 찾아가야 하는 까닭.

즐거우면 웃고 힘들면 울고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다다다다 달려가서 폭 안기고 어느 순간 분을 팡 터뜨리기도 하던 아이들이 머리털이 굵어지면, 말하고 행동하기 이전에 멈칫 하는 순간이 생깁니다. 자기 안의 잣대로 제 말과 행동을 판단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 눈치를 보면서 숨길 것과 드러낼 것을 가리기도 하고, 내면의 욕구와 자기가 속한 집단의 욕구 또는 인습 사이의 간극을 따지기도 합니다. 의식적으로 때론 무의식적으로. 그런 모습을 두고 ‘신중해진다.’라거나 ‘어른이 되어간다.’라고들 말하곤 하지만, 그런 과정이 달갑게 느껴지지만은 않습니다. 흔히 아이들은 그렇게 커가면서 자신의 빛을 점점 잃어버리기 때문이지요. 생기도 사그라들고요. 진짜 자기한테서 자꾸 자꾸 멀어지고 흐릿해져 갑니다. 행복을 느끼는 경우도 드문드문.

아이들이 자기를 잃고 기계처럼 돌아가는 삶의 굴레로 빨려 들어가지 않도록 제동을 거는 일이 필요합니다. 왜곡되지 않은 자기의 본래 빛깔을 찾는 일, 그게 볍씨 큰 아이들한테는 제일 중요한 배움 과정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작업을 세밀히 하기도 하고, 내 장점과 단점을 정리하기도 하고, 친구들 사이에서 내 모습이 어떤지 함께 이야기 나누기도 하고, 부모님과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살펴보기도 하고, 갈등이 생겼을 때 내가 어떻게 대처해나가는지 점검해보기도 합니다. 6학년 그리고 8학년 때에는 2박 3일 동안 에니어그램 영성 수련 과정에 참여하기도 하지요. 이런 과정은 힘겹기도 합니다. 내가 감추고 싶었던 것을 들춰서 보여야 할 때도 있고, 잊고 싶은 상처를 되살려 기억해내야 할 때도 있고, 보고 싶지 않은 내 모습에 직면해야 할 때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아이들은 이러면서 삶의 주체로 걸어 나가는 힘을 기르고 점점 성숙해져갑니다.

‘자기 보기’에 힘쓰면서 자란 아이들은 건강한 세계관을 가지고 세상을 보는 안목이 생깁니다. 때때로 아이들의 눈은 어른들이나 현재 사회의 잘못을 꼬집는 목소리로 드러나기도 합니다. 올해 들어서 아이들은 강을 깊이 파고 댐만한 보를 설치하는 공사 때문에 강 여기저기가 헤집히고 마구 마구 파괴되고 있어, 한창 열심히 움직였더랬습니다. 여름에는 여강에 내려가 강을 따라 걸으면서 공사 현장을 직접 둘러보았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자기 생각을 말하기도 하고 글을 써서 공유하기도 했습니다. 또 엊그제엔 볍씨에 많은 손님들을 초대하는 큰 행사가 있었는데, 방 두 칸에 <강보다 찐한 차>라는 이름으로 찻집을 차렸어요. 강에서 찍어온 사진을 전시해 두고, 시를 써서 붙여두고, 강의 실태를 알리는 게시물을 만들고, 영상을 만들어 상영하기도 했지요. 따뜻한 차와 다과를 나누며, 가슴 아픈 현실을 사람들한테 알리고 공사를 반대하는 일에 힘쓰고 계신 분들을 후원하는 성금을 모으려고요.

아이들이 이렇게 힘차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것을 보면, 어른들이 도리어 깨우쳐 반성하게 됩니다. 교사들도, 부모들도 자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되는 것입니다. 진실보다는 현실과 충돌하면서 주춤거리고, 남의 이목을 의식해서 한 발짝 물러서고, 사회에서 인정받는 사람으로 살기 위해 짐스러운 역할에 눌려 쫓기듯 하루하루를 보내고, 그동안 살아온 관성의 힘을 탓하면서 게으름 부리며 살아왔던 것에 대해서. 그러면서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무엇을 꿈꾸고 있는지 다시 묻기 시작합니다.

어른이 아이들이 변화하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더디 가더라도 지금 바로 새롭게 출발하려고 마음을 먹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살면서, 자신을 옭아매는 틀에서 스스로를 풀어내고 자유롭게 내 소리 내 몸짓을 펼쳐내는 일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 이제는 맛보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