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가 꿈꾸는 일은 살면서 일과 놀이가 분리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이 하는 일이 단지 육신과 영혼을 짓누르는 고단한 노동이 아니라, 먹고 살기위해 하는 수 없이 하는 호구지책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을 잘 발휘하는 즐거운 놀이라면 얼마나 이상적인 것일까.

내 직업은 음식을 만들고, 만드는 방법을 가르치고, 어떻게 하면 잘 먹을 수 있는가하는 것에 관련되어있다. 처음엔 요리 강습을 했고, 학교와 문화센터에서 식생활개선을 가르쳤고, 이젠 대중음식점을 경영하며 주방장으로 일한다. 음식 만들기는 내가 잘 하는 일들 중의 하나이고, 이 일로 나는 생계를 꾸리고, 보람을 느끼며 산다. 어릴 적부터 유난히 소꿉놀이를 즐겼던 나는 매일 소꿉놀이하듯 주방 일을 한다. 내가 즐겨했던 놀이가 내 일이 되었고 그 일을 즐기면서 생계를 꾸리니 복 받은 사람 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내가 하는 이 일이 나의 일이며, 놀이라고 생각한 것은 오래지 않다. 요리하는 일은 끊임없는 노동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힘들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어떻게 하든 일주일에 한나절은 무조건 쉬기로 하고 그 쉬는 시간을 즐겁게 놂으로 기진맥진한 내 노동에 새로운 기쁨을 재충전을 하기로 했다. 어떻게 하면 신나고 즐겁게 쉴 수 있을까?

그래서 내가 택한 놀이는 풍물이었다. 마침 내가 사는 동네에 여성 단체가 주최하는 풍물패가 있어서 일주일에 한번씩 풍물강습을 받을 수가 있었다. 풍물 강습 첫날부터 저 깊은 곳에 잠자고 있던 신명이 뱃속부터 솟아오르는 걸 느꼈다. 육 개월 여의 풍물강습은 나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나는 만나는 여성들마다 시간을 내어 풍물을 배우라고 말한다. 남자들은 이미 어려서부터 패거리로 다니며 단체 활동의 경험이 많다. 전쟁놀이부터 말이다. 나이가 들어서도 하다못해 조기축구회 등을 통해 공을 차며 같이 즐거이 논다. 여성들은 운동을 해도 단체로 하는 운동은 거의 안한다. 여성 축구나 야구단이 거의 없는 것이 단적인 예다. 그럼, 여성들은 같이 모여서 뭘 하며 놀까? 나는 그 대안이 풍물이라고 생각한다. 풍물은 일정의 훈련과정을 거쳐야한다. 하지만 기본 장단만 배우면 상쇠의 신호에 따라 이리저리 신명나게 놀 수 있다. 장구와 징과 꽹과리와 북이 어울려 흥을 연주한다. 서로 장단을 맞추려니 마음이 하나가 된다. 마음으로 흥겨워 몸마저 더덩실 저절로 춤사위가 나온다. 장구를 치다가 제 멋에 겨워 악기를 내려놓고 덩실덩실 춤을 춰도 좋다. 다 같이 짧은 시간에 이리도 즐겁고 신나게 즐거울 수 있는 놀이가 무엇일까?

나는 시골로 이사를 하면서 풍물을 그만두게 되었지만 방안에 장구를 모셔두고 언젠간 다시 신나게 장구를 칠 날이 오리라 기다렸다. 며칠 전, 내가 사는 시골로 우리 풍물 동지들이 놀러왔다. 반가운 마음에 뛰어나갔더니 다들 장구를 하나씩 들고 차에서 내리는 것이 아닌가! 갑자기 가슴이 찡하고 눈물이 핑 돌았다. 다들 장구를 둘러메고는 길놀이를 시작했다. 덩덩 쿵따쿵... 집 한바퀴를 돌면서 하는 일이 잘 되고 살면서 나쁜 일 없으라고 가는 길마다 꼭꼭 밟아주며 신나게 장구를 친다. 장독대로, 바깥 화장실로, 뒤뜰로, 이층의 식당으로, 주방으로 액막이 타령을 구성지게 부르면서 다들 신나게 어울렸다. 도시에서 온 초보 풍물패들 소리에 동네선 아주머니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구경 나오시고 어느새 풍물 한마당이 되어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시더니 누가 손님이고 누가 주인인지... 다들 제 흥에 겨워 막춤을 춘다. 동네 부녀회장님, 소먹이 엄마, 승원이 할머니, 꼬부랑 할아버지...다들 시원한 막걸리 한 사발에 얼큰해져서 뚱땅거리는 장구 소리에 펄펄 난다. 장구를 메고 펄펄 뛰는 도시 아줌마들도, 그 어설픈 장구 장단에 어깨를 들썩이는 시골 아주메도 즐겁긴 매한가지다.

일 할 때 즐거이 하려고 장단을 맞춘 것이 풍물의 기원이라니 풍물도 놀이며 일이다. 그렇다. 원래 우리는 일과 놀이가 분리되지 않았다. 몸과 마음이 분리되지 않은 것처럼 우리의 삶과 꿈이, 우리의 어제와 내일이, 우리의 땅과 하늘이 다름이 아니다. 살면서 하루하루가 다 놀이다. 어제는 벚꽃이 만발하니 벚꽃놀이요, 오늘은 민들레가 들판에 가득하니 민들레 축제다. 내일은 이름 모를 들꽃이 노랗게 필터이니 들꽃 세상이다. 비가 오면 비 놀이요, 바람 불면 바람 놀이다. 손님이 많이 오면 잔치 놀이요, 손님이 없으면 휴식 놀이다. 그래서 매일 아침 앞치마를 힘껏 둘러치고 부엌으로 들어가며 외친다. 아, 오늘은 뭘 하며 놀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