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겹도록 더운 날씨다. 이런 날씨에는 덥다, 덥다 하면 더욱 더운 것 같다. 셰익스피어는 “내가 날씨 따라 달라질 사람 같소?”라는 명대사를 남겼지만, 날씨가 덥다 보면 불쾌지수도 올라가는 것이 인체과학적으로도 옳다. 하지만 날씨 따라 감정적인 상태도 너울너울 춤을 추는 상태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덥든 춥든 지긋하게 중심 안에 머무는 자세가 바람직하다. 아무리 비바람이 몰아쳐도 ‘태풍의 눈’ 안에서는 푸른 하늘이 언뜻언뜻 비치듯이, 바깥 날씨가 아무리 요란을 떨어도 우리 마음 상태는 평화 속에 머물 수 있는 비방 같은 것은 없을까?

사랑은 흔히 ‘따뜻한 것’으로 표현되지만, 이런 날씨에는 적절한 비유가 아니다. 감동적인 사랑 이야기는 추운 날씨에도 제격이지만, 요즈음처럼 더운 날씨에는 시원한 한 줄기 자연풍이 되어 준다.

더위를 피해 산으로 들로 떠난다는 것은 어불성설에 가깝다. 피서철에는 어디를 가든 사람으로 꽉꽉 만원을 이루기 때문이다. 더위를 피하기는커녕 36.5도짜리 난로들이 피워대는 반갑잖은 열기에 시달려야 한다. 차라리 한결 헐렁해진 도심의 여유를 즐기는 것이 더 낫다. 더위를 피할 것이 아니라 평소에 늘 중독되어 왔던 텔레비전이나 인터넷, 전화와 휴대폰에서 해방되는 시간을 가져보자. 아예 모든 전원을 다 차단한 어둠 속에 잠겨서, 온전히 혼자만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그러다가 정히 쓸쓸해지면 음악이라도 슬그머니 흘려보내는 것도 좋으리라. 혼자서는 컴퓨터를 사용할 만한 힘도, 운동신경도 갖지 못한 여섯 살짜리 마샬이라는 이름의 장애아는, 컴퓨터 자판을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임으로써 완성한 <신의 키스>라는 시집을 내어 세계인을 감동으로 몰아넣은 바 있다. 그 아이는 이렇게 썼다.

사랑스런 음악은
영혼을 쓰다듬는 힘이 있어요
바흐를 들을 때면
신들의 착한 눈빛이 느껴져요

아이가 쓴 단순하기 짝이 없는 몇 줄의 시가 굉장한 에너지로 다가온다. 아름다운 음악의 선율 속에서 두 눈을 꼭 감고 도취된 소년의 얼굴이 떠오른다. 아이의 머릿속에서 춤추고 있을 요정들의 몸동작에 나마저도 저절로 흥이 솟는다. 그렇다, 이런 아이가 있는데 어떻게 감히 쓸쓸함을, 외로움을, 절망을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그 아이 앞에서는 ‘피서’ 운운 하는 것이 그만 사치가 되어 버린다. 어디에서 무얼 하든 세상살이 모두가 아이 앞에서는 갑자기 사랑의 기적이 된다.

아이는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이런 시구를 썼다.

세상의 완벽한 지혜를 발견한다 할지라도
나는 기꺼이 하늘에서 들려오는
희망의 종소리에 귀 기울일 거예요 ……

나는 하늘로부터 내 가슴속까지 울려 퍼지는
종소리를 제일 큰 아름다움으로 여겨요

나는 그 시를 읽으면서, 아이의 가슴을 뒤흔들었을 종소리가 내 가슴 안에서도 울려오는 것만 같았다. 그렇다, 희망의 종소리는 늘 하늘에서부터 시작되고, 비롯된다. 하늘에서부터 들려오는 희망의 종소리를 들을 수 없다면, 세상은 얼마나 지겹고 답답한 곳이 되어 버릴 것인가? 희망의 종소리를 들을 수만 있다면, 그럴 귀만 가지고 있다면, 이 더위가 무슨 문제가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