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에 운동이라고는 숨쉬기 운동(그것도 제대로 하려면 되게 어렵다는 사실!)밖에 안 하고 살다 보니, 스포츠와 관련된 모든 것이 낯설고 멀게만 느껴진다. 열심히 뛰는 운동선수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TV에서 스포츠 뉴스나 스포츠 중계방송이라도 나올라 치면 얼른 채널을 돌려버리는 게 습관이 되어 있다. 그 날도 그랬다. 슈퍼볼 어쩌구 하길래 반사적으로 딴 데를 틀었다. 그런데 거기서도 또 똑같은 화면이 나오는 거였다. 모든 방송이 하인스 워드 선수 이야기로 도배를 하고 있었다.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얼마나 격앙되어 있던지 화면 밖으로 침이 튀길 것만 같았다.

다시 말하건대 나는 스포츠에 문외한일 뿐만 아니라, 스포츠 스타에게 주어지는 과분한 영광도 이해가 잘 가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니 미국 프로풋볼 슈퍼볼의 최우수선수 MVP라는 타이틀 속에 얼마나 큰 의미가 담겨있는지 감을 잡지 못할 수밖에……. TV는 나 같은 사람을 교육시키기 위해 애프터서비스 A/S를 제공하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카메라는 연일 하인스 워드 선수의 뒤를 좇으며 미국에서 슈퍼볼 스타가 갖는 위상을 조근조근 설명해 준다. 과연 그는 ‘좋은 집과 좋은 차’로 상징되는 미국식 성공을 확실하게 거둔 듯 했다. 게다가 한국인 어머니와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로, 가난과 멸시, 고독과 혼란을 딛고 일어선 그의 성공신화는 ‘아메리칸 드림’의 모델로 손색이 없어 보였다. 헐리웃 영화판도 벌써 그에게 추파를 던지고 있는 모양이다.

개인적으로 스포츠 뉴스에서 감동을 먹기는 이번이 아마 두세 번째가 아닌가 싶다. 영화 <말아톤>으로 유명한 발달장애우 배형진군이 철인3종 경기를 완주했을 때도, 그리고 ‘수영의 말아톤’으로 불리는 김진호군이 세계장애인 수영선수권대회에서 3관왕을 차지하고 돌아왔을 때도 가슴이 뭉클했었다. 사람이, 그것도 누구보다 불리하며 열악한 조건에 있는 사람이 자기 자신을 극복하고 눈물겨운 성취를 이룩해 낸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가슴 따뜻한 미담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런 감동적인 뉴스를 들을 때마다 예외없이 밀려드는 이 슬픔의 정체는 뭐란 말인가?

그들이 그렇게 죽을힘을 다해 자기 존재를 세상에 알리기 전까지는 그들을 아예 없는 듯이 취급하는 우리의 편리한 무관심이 슬픈 것이다. <말아톤>의 윤초원에게는 열광하면서, 장애인 시설이 우리 동네에 들어오는 것은 결사반대하고, 장애우가 우리 아이와 같은 반이 될까봐 기를 쓰고 통합교육을 불허하는 우리의 교활한 이중성이 슬프다. 다니엘 헤니 같은 백인계 혼혈에는 너그러우면서, 흑인 또는 남미계나 동남아계 혼혈에 대해서는 내놓고 업신여기는 우리의 천박한 허위의식이 슬프다. 모두가 함께 거들어서 돌보고 책임져야할 부분을 온전히 어머니의 몫으로 떠넘긴 채 나 몰라라 방관하고 있다가, 잘 되면 ‘위대한 모성’ 어쩌구 입에 발린 칭찬 한마디로 모든 걸 무마하려 들고, 잘못 되면 영원히 손가락질이나 하는 우리의 몰인정한 무책임이 슬프다.

그렇다, 그건 슬픔이다. 잘난 순혈주의 純血主義의 망령이 지배하는 이 나라에서 살지 못하고 미국행을 택한 모자의 사연은 슬픔 그 자체다. 겉으로는 다인종 국가를 표방하지만, 속으로는 인종차별의 원죄를 뿌리깊이 가지고 있어 이들 모자에게 고통과 설움을 안겨준 미국의 실상 역시 슬프기는 매한가지다. 낯선 땅에서 영어도 변변히 못하는데 홀로 아들을 키워야 했던 어머니의 한은 새삼 말해서 무엇할까? 자기를 내친 어머니의 나랏말로 팔뚝에 이름 석 자를 새길 때 아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래서 하인스 워드 선수를 바라보는 내 마음은 부끄럽다. 인생의 어두운 터널을 통과한 자에게서 느껴지는 그런 허허로운 미소로 담담하게 카메라를 응시하는 그의 어머니에게 죄스럽기까지 하다. 언제부터 챙겼다고 그에게 ‘한국인의 피’를 호소하는지, 언론의 뻔뻔함이 민망해 죽겠다. 카메라는 그를 비춰주고 있지만, 역으로 그는 우리 자신을 비춰주는 거울과도 같이 그 자리에 서 있다. 그를 통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읽어내지 못한다면, 워드 열풍은 단지 우리 사회의 고질병인 성공주의를 확인시키는 여러 사례 중의 하나로 묻혀 지나갈 것이다. 그러므로 이참에 우리가 가난, 장애, 인종, 성적 취향 등을 이유로 ‘어울림’의 범주 안에 포함시키지 않았던, 배제되고 박탈당한 사람들에 대한 진지한 관심이 일어야 할 줄로 믿는다. 그것이 진정으로 하인스 워드를 축하하고 기억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