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형상화한 평화비를 둘러싸고 연일 시끄럽다. 작년 12월 수요시위가 1000회를 맞이하면서 일본대사관 앞에 평화비를 건립하는 문제로 한일 양국간의 신경전이 오고갔다. 일본 우익들은 평화비를 일본대사관 앞에 세우면, 다케시마는 일본땅이라고 쓰여진 비문을 주일한국대사관 앞에 세워 맞불을 놓겠다고 공언을 했고, 실제로 일본정부는 한국정부를 비롯하여 시민단체들에게 평화비를 일본대사관 앞에 세우지 말라고 종용해왔다. 또한 한일정상회의에서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은 일본군 위안부문제에 대해 일본정부가 성의있는 조처를 취하라고 요구했고 일본의 노다 총리는 지혜를 짜내겠다면서 그 수준을 1995년 아시아여성기금 수준에서 고려하는 내용을 언급해서 한국의 거센 반발을 받았다.

일본군 ‘위안부’문제가 본격적으로 세상에 드러난지 20년이 넘었는데 문제해결을 위한 양국간의 인식차이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2011년 8월 헌법재판소는 한국정부가 일본군 위안부문제에 관해 정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요점의 판결을 내렸다. 그 후 한국정부는 전향적으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일본정부에게 여러 형태의 압박을 가한 것이 이전과 달라진 현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일본정부는 1965년 한일협정으로 일제 식민지에 관한 일본정부의 법적 책임은 일괄적으로 해결되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문제에 관해서는 피해자들에게 위로금 지급을 했던 아시아여성을 위한 국민기금(이하 아시아여성기금) 이상도 이하도 고려하지 않고 있다. 아시아여성기금이란 전후 50년을 기념해서 일본정부가 국민성금과 국가지원금을 통해 기금을 조성하고 이를 위로금 형태로 피해자들에게 제공하여 일본정부가 법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피해국으로부터 비난을 받아왔다. 이러한 일본의 태도는 일본정부의 법적 배상을 요구하고 있는 피해국의 요구와는 너무 거리가 멀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가는데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고, 피해자들은 80대 고령으로 한분 두분 돌아가시고 있다. 그동안 위안부 문제에 관해 목소리를 높여왔던 것은 피해자들이나 피해자 지원단체들의 몫이었는데, 최근 양상은 좀 다르다. 우익적 민족관을 가지고 있는 일반시민에 의해 감정적 대립으로 나타나고 있다. 스즈끼라는 이름의 일본인은 평화비 옆에 ‘다케시마는 일본땅이다’ 라는 말뚝을 박았고, 이에 대한 맞대응으로 60대의 한국인은 ‘독도는 한국땅’이라는 현수막을 건 트럭을 타고 일본대사관으로 돌진했다. 일본인의 행태는 말뚝 하나에 3천엔으로 판매하고 있고, 이에 자극을 받았는지 일본우익들이 말뚝박기를 이어가려는 움직임도 있다고 하니 일회성 해프닝으로 보기 어렵다. 피해자를 상징화한 평화비를 둘러싸고 독도라는 또 다른 한일갈등과 엮이고 민족적 감정대립으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일본군 위안부문제가 전시 중 여성성폭력으로 읽혀지고 그것에서 해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한일 간의 첨예한 영토갈등으로 읽혀지면서 양국 간의 민족주의를 부축이게 될까 우려되는 대목이다.

일본인의 말뚝사건은 생각할수록 폭력적이다. 언론이 뽑은 자극적인 헤드라인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소녀상과 말뚝이라는 상징 속에서 일본의 식민지 전쟁 중 일본 군인들이 위안소 출입할 때 지급된 콘돔의 이름이 ‘돌격1호’였다는 점이 자꾸 상기되는 것은 과민한 반응인가? 위안부제도 속에서 피해자들에게 가해졌던 가부장적 폭력성이 말뚝사건 속에서 그대로 노출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그만큼 위안부문제의 역사적 맥락의 뿌리가 깊고, 이 문제의 본질 또한 결코 단순하지 않기에 예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군 위안부문제는 일본 식민지 시대에 일어난 문제라는 점에서 한일과거사의 핵심이기도 하지만, 전시 중 여성에게 가해지는 성폭력이라는 점에서 이번 말뚝사건을 바라보는 심정이 복잡하다. 일제 식민지로부터 해방을 기념하는 8월 15일이 있는 8월에, 남성들의 가부장성과 민족주의의 배타성이 그대로 묻어나는 이 사건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더욱 슬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