몹시도 무더운 여름이었다. 여름을 좋아하는 나도 이번 여름은 유난히 더워 힘들 정도였다. 8월이 지나 아침저녁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니, 그 무덥던 여름을 어떻게 살았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얼마 전 한국에서 2003-2012년 10년간 LG프랑스법인에서 일을 했던 프랑스인 에릭 쉬르데주가 “한국인은 미쳤다”는 제목으로 한국에서의 경험을 책으로 냈다. 독일 유학 13년의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내게도 한국사회가 미쳐 돌아가는 것 같은 인상을 가졌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좀 점잖지 못하고 다소 자극적인 이 제목의 책이 끌렸다. 내용인즉, 한국인은 너무 일을 많이 한다는 것이다. 하루 공식적인 근무시간이 끝나면 저녁 먹고 다시 들어와 야근을 하고, 지금은 주 5일제 근무이지만 얼마 전만 하더라도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일하여 일주일에 근무시간이 60-80시간 일을 한다는 것을 지적했다. 너무 일을 많이 하니 가정을 돌보기는커녕, 자신의 건강을 돌볼 겨를도 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처럼 대학교수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좀 여유롭게 살고 있는 건가? 남들이 볼 때는 방학이면 놀아도 되는 직업처럼 보이지만, 요즘 교수들도 여유가 없다. 나도 가끔 밤 10시 이전에 퇴근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원고마감일이 다가오면 12시가 넘도록 연구실에 남아있게 되기도 한다. 내가 퇴근하는 늦은 시간에도 불이 켜 있는 연구실도 여럿 된다. 젊은 교수들은 승진을 위한 연구 업적 쌓기에 낮밤 없이 일한다. 사실 교수란 직업은 누가 시켜서 하는 연구를 하기 보다는 본인 자신이 스스로 문제의식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연구하는 일이라 할 수 있건만, 언제부터인가 논문을 생산하도록 강요받고, 여유 있게 생각하며 연구를 풀어나가기 전에 논문의 수적 양산을 도모해야 하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무더위가 여러 날 기승을 부리던 이 여름, 가끔은 폭우도 내렸다. 퇴직한 친구, 교수로 있는 몇몇 친구들은 퇴직했다고 방학이라고 외국으로 열흘씩 한 달씩 여행을 가기도 하건만, 나는 이번 여름에도 한 주말(이틀)을 제외하곤 매일 연구실에 나가 연구한다고 앉아 있었다. 7월 내내 1학기 밀린 일들 처리하고, 8월 들어서 10월 학회 때 발표할 논문을 준비하고 있었다. 일주일에 하루 안식하라는 신의 명령도 지킬 여력이 없다. 기진맥진. 나도 이미 미친 한국인의 반열에 들어온 지 오래된 것 같다. 일이라는 우상이, 성과라는 우상이 우리 모두를 미치게 하는 것 같다.

인품으로 사람을 평가하기보다는 업적과 성과로 사람을 평가하는 세상이다. 기업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모든 영역에서 사람을 일군으로만 본다. 회사원은 회사가 원하는 대로 업무 성과를 위한 프로젝트를 만들어내고 영업사원은 실적을 올려야 하고, 교수나 연구원들은 연구논문을 생산해내느라 절절매고 살고 있다. 생산직 사원은 좀 더 많은 물건을 좀 더 적은 시간 내에 생산하도록 독촉을 받는다. 어느 직종에서 일하건 성과에 대한 압박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심지어 훌륭한 설교로 존경을 받아야할 목사들조차도 교회 재정 확대, 교인수 증가 등의 성과에 대해 압박을 받는다. 성경에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출 20:8)고 기록되어 있지만, 목사는 일주일에 하루도 제대로 쉬기가 어렵다. 동안거 하안거가 제도화되어 있는 불교 사제가 부러울 정도이다.

개개인이 자신의 삶에 주체자로서 소신껏 살지 못하고, 주어진 일에 종속되어 살아가는 것은 오랜 세월 길들여진 것 같다. 우리는 모두 학생 때부터 시험치는 데 능하다. 고등학교 졸업자의 80% 이상이 대학에 진학하고, 세계적인 수학올림피아드, 물리올림피아드, 화학올림피아드 등에서 한국학생이 우수한 상들을 받아오는 어마어마한 교육 강국이 되었지만, 정말 창의적인 수학자나 물리학자나 화학자는 드물다. 어느 정도까지는 잘 하지만, 그 이상 잘 하는 사람은 드물다는 것이다. 우리가 연습한 것은, 주어진 문제를 푸는 것, 그것도 수능시험처럼 다섯 개 중 하나는 정답이라는 전제 하에 정답 찾기가 바로 공부라고 하면서, 점수가 높으면 우수한 학생인 것처럼 인정을 받으며 살아왔다. 생각하지 않는 교육, 정답을 골라내는 것으로 점수를 높이는 시험에 익숙해지면서 한국인은 타인이 원하는 삶을, 상부가 지시하는 일을 수행하는 삶을 살아 왔던 것이다. 행복이란 단어는 멀고먼 다른 행성에나 있는 것처럼 여기며.

“한국은 미쳤다”를 출간한 쉬르데주는 2003년에서 2012년까지 10년간 LG에서 일하면서 10년 만에 10배의 성장의 신화를 이루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그렇게 지속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지속적 성장을 위해서는 상부가 정한 목표와 끝없는 통제만으로는 안 되고, 인간 존중, 자율성 강화, 소통 강화, 창의력제고 등이 필요하다고 진언한다. 그가 제안한 이 네 가지는 기업만이 아니라, 가정, 학교, 교회 등 모든 영역에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이제는 좀 쉬면서 삶의 주체로서의 자기 자신을 회복하는 일이 긴급하게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