볍씨학교가 겨울방학을 했습니다. 아이들이 쑤욱 빠져나가서 볍씨는 조용합니다. 함박눈이 내려 천지사방이 눈 세상이 되었던 날에도 그랬습니다. 아이들이 있었다면 작은 눈사람, 큰 눈사람, 뚱뚱한 눈사람, 몸통이 셋인 눈사람, 이런 저런 온갖 모양의 눈사람이 태어났겠지요. 또 눈덩이들이 여기저기 날아다니며 웃음소리, 기합이 잔뜩 들어간 소리, 눈덩이에 퍽 맞아 볼멘소리가 가득하고, 개성 만점의 집들, 성들, 굴들이 만들어졌겠지요. 하지만 그 날엔 선생님들이 빗자루와 눈삽을 들고 눈을 부지런히 치우는 일이 먼저였습니다. 스슥. 스스스. 그런데 요 며칠 사이 볍씨가 또 다른 아이들을 맞이하느라 다시 분주해졌습니다. 계절학교 기간이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여름과 겨울, 방학 때면 볍씨학교에 다니지 않는 광명시의 아이들이 볍씨학교에 찾아옵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그리고 또 그 다음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이렇게 10일 동안 날마다 세 시간 정도 볍씨에 머무르지요. 이 기간에 아이들은 볍씨 생활을 살짝 맛봅니다. 이번 겨울에는 꼴 그리기, 흙놀이, 손뜨개질, 나무 곤충 만들기, 강정 만들기, 장구 가락 배우기, 고구마 구워 먹기와 같은 활동들을 하려고 합니다. 아이들은 보통 이런 새로운 배움꺼리들에 흥미를 느끼고, 이전에 경험한 것과는 좀 다른 문화와 관계를 접하면서 색다른 추억을 담아갑니다. 교사들도 짧지만 보다 의미 있는 만남을 이루어가기를 바라면서 아이들을 맞이합니다. 있는 그대로 서로를 존중하고, 우리 모두의 선을 위해 협력하고, 일방적이기보다는 대화를 나누고 교감할 수 있는.

‘어떻게 하면 지역과 소통하고 볍씨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함께 나눌 수 있을까?’ 이건 볍씨가 세워진 이래 늘 고민해온 문제 중 하나입니다. 볍씨학교의 출발점이 좋은 학교를 잘 만드는 것보다는 건강한 광명시를 만들기 위한 운동의 연장선 속에 있었으니까요. 내 아이만 보고 내 아이만 행복하기를 원하는 어떤 부모의 마음이 이기심과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볍씨 역시 학교 안으로만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어 왔습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만큼 지역과 접점을 만들려고 해왔고, 볍씨계절학교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서울, 안양, 부천, 시흥을 이웃으로 두고 있는 작은 도시 광명. 볍씨는 이 작은 도시에서 삶을 일구고 있는 사람들의 손으로 광명시 옥길동에 터를 잡았고, 그 뒤 10년 동안 계속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언젠가 어떤 분이 다른 지역의 넓은 땅을 두고 그곳으로 학교를 옮기면 어떻겠냐고 제안하신 적이 있다는데, 그 때에도 볍씨는 광명을 떠나지 않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볍씨 아이들한텐 광명시에 대한 공부가 중요한 과정이고, 아이들은 동네로 나가서 벼룩시장이나 음악회를 열기도 하고 놀이마당을 펼치기도 하고 동네 여기 저기를 탐사 다니기도 합니다. 일명 ‘동네활동’. 우리 동네의 주인은 우리들이어야 한다는 걸 스스로 각인시키는 과정이지요. 볍씨학교 입학 문의가 들어왔을 때 광명시에 거주하셔야 한다는 말씀을 제일 먼저 드리는 것도 같은 맥락의 일입니다. 교사들은 부모님들께 거듭 말하곤 합니다. 볍씨학교는 아이를 잘 키우는 데 방점이 있지 않고 지역공동체를 꿈꾸는 학교라고.

우리는 가끔 학교의 공공성을 논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다시 묻습니다. 볍씨학교가 모두에게 열려있지만 누구나 올 수 있는 곳은 못 되는 현실-적어도 교육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딴지를 걸어볼 수 있을 정도로 삶에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이기 때문에-을 보면서, 그래도 지금 우리한테 주어진 여건 안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찾습니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사람들을 떠올리며 이곳에 심은 우리들의 진심마저 회의를 담은 눈길로 바라보게 되는 그 때에도,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고 좀더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찾습니다. 그렇게 그렇게 학교를 넘어서 이 지역 안에 좀더 넓고 깊게 뿌리를 내리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