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가 예언자로 소명을 받을 때, 땅의 성전이 아닌 하늘의 성전에서 소명을 받는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이는 백성들이 제 각기 좋을 대로 신을 섬김으로서 땅에는 하나님을 향한 성전다운 성전이 없었고, 예배다운 예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은 악행을 일삼으며 살았습니다. 정의 없이 살았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중병에 걸린 백성들의 정신 상태를 반어법으로 말씀하십니다. 마음이 살쪄서 하나님의 은총을 감지하지 못하고, 청력이 무디어져서 말씀을 듣지 못하고, 눈에 꺼풀이 끼어서 진실을 보지 못하게 하라(사 6:11)는 것입니다. 이 보다 더 심각할 수 없습니다. 더는 가망이 없는 백성입니다. 심판을 피할 길이 없는 백성입니다. 그러함에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사는 땅에서 잘려나가고, 뽑혀나갈지라도 그 잘리고 뽑힌 그루터기에서 새 싹이 나오게 하실 것임을 선포하십니다. 가슴을 쿵쿵 치는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살아남은 자 모두를 심판하면서까지 당신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어느 누가 이런 하나님을 향해 수작을 부릴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 당시 성전의 실상을 보여주는 삽화가 있습니다. 간음한 여인을 예수 앞에 끌고 나온 이야기입니다. 요한은 이 장면을 생생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들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저희를 가르치시더니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요 8:2-5). 이들이 간음한 여인을 끌고 온 장소는 성전입니다. 예수께서 가르치시는 자리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나와야 할 자들이, 누군가를 옭아매고 죽이기 위해 나온 것입니다. 이들에게 성전은 이미 성전이 아닙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이야말로 성전을 수호하는 전위대쯤으로 여기는 자들입니다. 인간의 위선이 이보다 더 뻔뻔할 수 없습니다. 정말 성전의 거룩함을 위해 헌신하는 자들이라면, 그리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드리운 성전이기를 바란다면, 누군가를 죽이고자 하는 사악한 마음을 먼저 씻고 나와야 할 것입니다.

종교가 타락했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 있습니다. 종교의 가르침은 모양도 닮지 않으면서, 그 종교의 기득권에 충성하는 자들만 득세합니다. 교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교회가 타락하면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사는 데는 관심 없고, 교회라는 조직에 충성하는 자들만 득세합니다. 그들은 ‘거룩한 교회’, ‘주님의 몸된 교회’, ‘피값으로 산 교회’를 입에 올리며 못된 짓을 가리지 않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을 시험하는 수작들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고, 연약한 자를 보살피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린다면 그런 교회는 반석 위에 세운 교회요 아름다운 교회일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지도 않고, 존중하지도 않으면서, 교회라는 조직에만 충성하는 데 열심이라면 그런 열심은 교회를 병들게 하는 열심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어떻습니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은 뒷전이면서 교회를 향한 충성심은 유별나게 뜨겁습니다. 덕분에 교회라는 조직은 비대해졌습니다. 사람들은 이걸 ‘부흥’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교회는 세상의 빛이 되지 못합니다. 우리 주변의 교회들을 둘러보면 교회라는 조직을 부흥시킨 이들이 득세합니다. 조직 관리를 잘하거나, 재정적으로 기여하거나, 교회 이미지에 보탬이 될 성싶은 사회 저명인사들이 교회 요직을 차지합니다.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성전처럼 된 것이지요. 우리는 이런 교회의 부흥을 위해 무릎 꿇고 기도할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함을 가슴을 찢고 통회해야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마음이 살쪄서 하나님의 은총을 감지하지 못하고, 귀가 둔해져서 말씀을 듣지 못하고, 눈이 죄악으로 덧 씌워져서 분별력을 상실하는 것입니다.

이 영악한 시대에 진실하게 산다는 게 참으로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함에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진실하지 못한 삶을 회개하는 것만이 그나마 용서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라는 조직에 충성하지 말고, 주님의 가르침대로 살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그리하다보면, 그 빛이 자연스레 세상을 밝히는 희망의 빛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