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습니다. 금년 들어 제일 먼저 받는 성탄과 새해 축하 인사를 받고 보니 아주 신선하게 기쁩니다. 반대로, 자매님의 질문을 받고 보니,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띵하기도 합니다. 성탄절을 지킨다는 것이 단순히 예수님의 생일잔치나 하는 것 정도로 알고 있는 우리들에게 성탄의 의미를 좀 심각하게 물어보자는 충격적인 도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제 곧 다가올 금년 성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를 다시 한 번 숙연하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저는 성탄 즈음이면 생각나는 시 한 수가 있습니다. 김종길 시인의 “성탄제(聖誕祭)”라고 하는 시입니다. 한 번 제가 읊어 볼까요?

어두운 방 안엔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러히 잦아가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____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생,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 것이란 거의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이 시인은 자기의 병이 기적적으로 나았을 때가 바로 성탄제의 밤이었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열병으로 죽어가던 어린 시절의 이 시인은 아버지와 할머니의 사랑으로 치유 받은 그 날이 바로 성탄제였다고 회고하고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죽어가는 어린 핏줄의 목숨을 건지기 위해 마지막 수단으로 아버지가 해 볼 수 있었던 것은 산수유 열매가 열병에 좋다더라는 속설에 한 가닥 희망을 걸어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짐승처럼 무력하게 죽어가던 그 어린 것이 산수유 그것 자체보다는 저를 살리려고 애쓴 아버지의 사랑에 감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추운 겨울밤, 그 추운 방안에 화로가 없었고, 꺼져가는 목숨 옆에서 함께 아파하는 할머니가 없었고, 눈길을 헤쳐 가며 산수유 열매를 따오는 아버지가 없었다면, 찬 겨울, 밤 공기에 서늘해진 아버지의 겉옷에 짐승처럼 자기의 뜨거운 볼을 부빌 수 없었다면, 이 아이는 싸늘하게 목숨이 잦아들고 말았을 것입니다.

저는 이 시인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의 종교도 그의 신앙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없습니다. 다만 저는 평소에 좋아하던 이 시를, 후에 알았습니다만, 이 시는 시인이 1955년에 "현대문학"에 발표하여 등단한 시라고 합니다. 분명한 것 하나는 그가 아버지의 사랑을 인식하던 그 어린 시절을 회고하면서 그 날이 바로 성탄제였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시를 읽는 이들로 하여금 성탄은 곧 사랑이라고 하는 메시지를 깨닫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목숨이 잦아들고 있던 여린 생명을 살려낸 사랑을 체험한 것을 회고하면서 그 날이 바로 성탄제였다고 회고하고 있는 이 시인은 우리에게 성탄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발견하게 합니다. 그가 이 시의 제목을 “성탄제”라고 한 것도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성탄은 바로 사랑입니다. 성탄은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당신의 피조물인 우리를 향하신 당신의 사랑을 확증하시는 사건입니다. 그러기에 요한 사도께서는 일찍이 우리에게 이 큰 은총의 사실을 아주 쉬운 말로 우리에게 증언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지극히 사랑하신다고 하는 것,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죽어가는 세상을 살리시려고 당신의 외아들을 우리에게 보내주셨다고 하는 것,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외아들을 믿는 사람마다 죽지 아니하고 오히려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려고 하신다는 소식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개역개정판] 요 3:16)

2003년 성탄에

민영진 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