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은 위기에 강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옛날 옛적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은 위기를 헤쳐 나왔고, 그때마다 쓰러질듯 쓰러질듯 위태로운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으나 역시 살아남았습니다. 이 편지를 통하여 최근의 경험도 확인하며 함께 나눈 바가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다 못해 답답한 것은 어째서 위기에 강한 사람들이 위기를 넘기고 나면, 얼마 안 가서 다시 해이해져서 또다른 위기를 불러들이는가 하는 것입니다. 위기에 강하다는 사람들이, 왜 호기에는 더욱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또다른 늪으로 빠져들 듯이 침체와 혼돈 속으로 빠지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로 현상 분석을 하고 원인을 규명해 봅니다. 특히 지난 1년을 돌아보며 하는 말은 대체로 정치 지도자들의 원칙이나 소신이 없는 정치 때문에 어지러 웠다고 합니다.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운 현실입니다. 그러나 현상에 매달려 보자면 어느 정권이나 시대를 막론하고, 문제는 비슷한 방식으로 분석되고 비판되었습니다. 이제는 문제를 더욱 근원적으로 살펴야 할 것입니다.

먼저 대통령에게 나타나는 문제부터 봅니다. 좋든 싫든, 인성의 문제와 연결시켜 생각하자면, 현재 대통령이 드러내고 있는 문제는 그의 개인적인 문제이나, 동시에 우리 국민성의 특징을 드러내는 것과 별다름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첫머리에서 언급한 것처럼, 위기에는 강한데 호기에는 약해지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되기까지가 어디 그리 쉬운 일입니까? 이른바 7전8기의 신화를 만들어냈다고 말할 정도가 아닙니까?

민주당내의 국민경선에 나설 때, 초반전에서부터 막판까지, 그야말로 그에게는 위기의 연속이었습니다. 급기야 타임지에서도 평하듯이 ‘벼랑끝 전술’에 강하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위기에 강했습니다. 그 숱한 위기를 잘 넘겼으면 대통령에 당선된 것처럼 좋은 기회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호기에는 강하지 못한 면을 여지없이 드러냈습니다. 대통령 되기가 쉽지 않은 것처럼, ‘대통령 노릇’하기도 그 못잖게 쉬운 일이 아님을 그는 개인적으로 뼈저리게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대했던 수많은 국민들과 특히 지지자들에게는 여간 실망이 큰 것이 아닙니다. 더 늦기 전에 대통령도 국민도 다 함께 되짚어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위기에 강한 우리가 호기에도 강해지는 겁니다. 길은 있습니다. 유일한 길입니다. 어차피 우리의 국민성을 대표하는 인성 유형을 지니고 있는 대통령부터 시작하면, 온 국민이 함께 갈 수 있는 길입니다.

그 길은 대통령이 오직 국민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국민은 서로 남을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수많은 위기를 극복하면서 대통령이 되겠다고 노력할 때와 달리, 이제는 이보다 더 큰 나라의 대통령 자리를 넘볼 일도 아니잖습니까? 개인적으로 아름다운 야망이 있다면, 역사에 길이 남을 존경받는 대통령, 사랑받는 대통령으로 남을 것만을 바라는 것입니다.

모름지기 지도자가 뜨거운 동정심을 가지고 단순하고 소박한 심성으로 국민을 사랑하며 소탈한 지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동안에는 견디기 어려운 갈등으로 인하여 생긴 불안정과 복합심리 때문에 돌출발언이 속출하였더라도, 이제 국민을 향한, 특히 야당을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나타내면 탁월한 근면과 활동과 관용이 가공할 힘으로 나타납니다.

사람이 어려서는 단순하다가도 크면서 복잡해지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정치 초년생 때에는 단순하다가도 커지면서 복잡해지니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제 성숙한 지도자로서 단순하게 국민만 생각하며 ‘큰 정치’를 하기로 마음먹으면 길은 열립니다.

대통령부터 시작하여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같은 위기의식과 역사의식을 가지고 서로 무조건적인 사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힘의 슬기로운 사용법은 여기에 있습니다. 오로지 국리민복에 충성복무 하는 것입니다. 대통령도 국민도 더 늦기 전에 자기발견을 치열하게 하면서 자신의 내면 속에 있는 ‘잠자는 거인’을 깨우는 것입니다.

우리의 내면 속에 있는 무서운 저력을 끌어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저력을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지속하는 것입니다. 이것만이 위기를 극복하는 힘과 지혜로 호기에는 더욱 강해지는 대통령과 국민이 될 수 있습니다. 자나 깨나 국민만 생각합시다. 자나 깨나 나라와 민족만 생각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