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린다. 가을비가 내린다. 추석을 며칠 앞두고 부슬비가 내린다.
“아무 소용없는 빈데….”
엄마가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아요.”
아빠가 말씀하셨다.
“왜?”
경완이가 밥을 퍼넣은 채 입을 벌리고 물었다.
“왜냐하면, 지난번 태풍 때 벼가 많이 쓰러졌거든. 쓰러진 벼에 묻은 흙탕물이 씻기라구 내리는 비야.”
아빠가 말씀하셨다.
“아하, 벼가 샤워하라구.”
경일이가 말했다.
“어른 이야기에 참견은… 어서 밥 먹구 학교 가, 지각하지 말구.”
경완이가 말했다.
“너는?”
“난 오후반이거든? 오후엔 비가 갤 거야, 흐흥!”
“요게?”
경일이가 일어서며 경완이에게 꿀밤을 주었다.
“당신, 오늘 도배한댔지?”
아빠가 말씀하셨다.
“비가 오는 걸요?”
엄마가 대꾸하셨다.
“그러니까 더욱 잘 됐지.”
“뭐가 잘 돼요?”
“비 오는 날 도배를 해야 천천히 말라서 터지질 않아요.”
“옛날엔 날 좋은 날 택했잖아요?”
“그건 당신 말대로 옛날 얘기지. 추석을 앞두고 도배를 할라치면 문도 바르게 되거든. 여름내 더렵혀지고 구멍 난 문종이를 뜯어내구, 창호지를 사다가 새로 바르지. 문고리 닿는 곳에 국화 꽃잎을 넣어 겹으로 발라 예쁜 무늬도 만들고, 새로 바른 문을 떼어다가 양지바른 곳에 세워두면, 북소리가 날 만큼 팽팽하게 마르거든? 그렇지만 이 아파트에야 창호지 마를 문이 어디 있소?”
“그래요, 그럼 전화를 걸어야겠네.”
엄마가 전화기 앞으로 돌아 앉으셨다.
“경완이는 책가방 챙겨놓구 엄마를 도와드려야 한다, 알겠니?”
아빠가 출근 준비를 하시며 말씀하셨다.
“네….”
경완이는 생각하고 있었다. 도배를 하려면 책장을 옮기게 될 것이다. 그러면 아기 새가 나올지도 몰라. 죽어서 바짝 마른 아기 새의 시체가 나올는지도 모른단 말야 경완이는 책가방을 챙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