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기증 님,

저더러 무슨 답을 하라고 이런 메일을 제게 보내신 것은 아니지요? 동문서답을 양해하신다면 저도 귀하의 질문을 계기로 하여 거기에 몇 가지 사견(私見)을 보태고 싶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사해 바다 밑에 수장시키려 하신 하나님을 지칠 줄 모르게 말리던 아브라함이 생각납니다(창 18장). 그렇게 만류했는데도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관철하셨지요. 또 정반대로 마땅히 벌 받아 진멸되어야 할 것으로 기대했던 요나의 기대와는 달리, 하나님은 악의 도성 니느웨를 파멸로 심판하시려다가 갑자기 계획을 바꾸어 “좌우를 가릴 줄 모르는 사람들이 십이만 명도 더 되고 짐승들도 수없이 많은 이 큰 성읍 니느웨를, 어찌 내가 아끼지 않겠느냐?"(욘 4:11)고 하시며 도성을 보존시킨 경우도 있지요.

이번 도호쿠 재난 사태와 관련하여 신의 존재를 묻기에 앞서, 인간의 존재 유무를 먼저 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그곳에 필요한 것은 지구촌에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의 헌신(獻身)”이지 저 멀리 있을 신의 개입(介入)이 아닐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사람으로서 취해야 할 일은 이웃의 슬픔을 위로하고 고통을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신학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묻는 것은 너무나 잔인한 현실 도피인 것 같습니다. 고난당하는 욥을 방문한 친구들이 생각납니다.

11 그 때에 욥의 친구 세 사람, 곧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은, 욥이 이 모든 재앙을 만나서 고생한다는 소식을 듣고, 욥을 달래고 위로하려고, 저마다 집을 떠나서 욥에게로 왔다. 12 그들이 멀리서 욥을 보았으나, 그가 욥인 줄 알지 못하였다. 그들은 한참 뒤에야 그가 바로 욥인 줄을 알고, 슬픔을 못 이겨 소리 내어 울면서 겉옷을 찢고, 또 공중에 티끌을 날려서 머리에 뒤집어썼다. 13 그들은 밤낮 이레 동안을 욥과 함께 땅바닥에 앉아 있으면서도, 욥이 겪는 고통이 너무도 처참하여, 입을 열어 한 마디 말도 할 수 없었다(욥 2:11-13).

욥의 친구들이 욥에게 이렇게만 하고 그를 위로하고 돌아가기만 했었어도 그들 사이 우정에 금이 가지는 않았을 것인데, 욥에게 더 깊은 상처를 주지는 않았을 것인데, 아니, 욥이 큰 위로를 받고 다시 살아갈 용기와 희망을 갖게 되었을 터인데, 갑자기 욥의 세 친구는 욥이 당하는 고난의 의미를 추구하기 시작했지요. 긴 말이 필요 없지요. 세 친구가 하나같이, 나중에 다른 친구까지 한 명 더 가세하여, 네 명의 친구가 욥의 고난을 죄의 결과로, 하나님의 심판으로 해석하기 시작했지요. 욥을 규탄하고 하나님을 변호하였지요. 마치 자기들이 하나님을 지켜주지 않으면 하나님이 큰 상처라고 입기나 하는 것처럼 그렇게 욥을 비난하고 하나님을 옹호했지요. 그런다고 하나님이 그 신학자가 된 그 친구들을 칭찬하셨던가요? 오히려 그 신학적 진술 때문에 그 친구들은 하나님의 분노를 샀지요. 욥에게 사죄하고 욥의 중재로 용서를 받긴 합니다만(욥 42:7-9).

차라리 그들이 고난당하는 욥을 보면서 제2이사야의 관찰자가 했듯이 자신들의 죄를 고백했더라면 용서받을 수 있었을 겁니다.

2 그는 주님 앞에서, 마치 연한 순과 같이, 마른 땅에서 나온 싹과 같이 자라서, 그에게는 고운 모양도 없고, 훌륭한 풍채도 없으니,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모습이 없다. 3 그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고, 버림을 받고, 고통을 많이 겪었다. 그는 언제나 병을 앓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돌렸고, 그가 멸시를 받으니, 우리도 덩달아 그를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 4 그는 실로 우리가 받아야 할 고통을 대신 받고, 우리가 겪어야 할 슬픔을 대신 겪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받는다고 생각하였다. 5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그가 상처를 받은 것은 우리의 악함 때문이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써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매를 맞음으로써 우리의 병이 나았다. 6 우리는 모두 양처럼 길을 잃고, 각기 제 갈 길로 흩어졌으나, 주님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다.(사 53:2-6)

“자연도 하나님을 배반하나요?” 좋은 질문을 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드립니다. 사람과 함께 계시는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계시기에 사람과 함께 재앙 앞에 노출되신 것이지요. 귀하께서 주신 질문은 앞으로 여유를 가지고 좀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지진해일로 인한 피해를 보면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보지 않고, 자연의 만행이라고 보신 귀하의 시각은 저도 줄곧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러나 거듭 말씀 드립니다만, 이번 지진 해일 피해로 우리는 인간의 대량 말살과 문명 종식을 예고하는 묵시록(默示錄) 두루마리를 읽은 것 같습니다. 사색(死色)이 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손을 내미시면서 “날 좀 살려 다오”하십니다. 고난 속 하나님께서는 헌신할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신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입니다.

고맙습니다.

민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