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토크쇼나 젊은이들에게서 흔히 듣는 말 가운데 누구는 존재감이 있다거나 아니면 없다고 하는 표현, 심지어는 미친 존재감이라는 표현을 자주 듣게 됩니다.

존재감이란 또래 집단 가운데서 두드러지게 보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어떤 특정한 사람의 드러나는 겉모습을 가르켜 하는 말인 경우가 많습니다. 한번은 아들아이가 서울 시청 부근에서 촬영 중이던 자기 나이 또래의 유명한 미모의 여성 탤런트를 가까이에서 보고 와서는 그 얼굴에서 후광이 비치는 것 같았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얼마전 우연한 경우에 진정한 의미에서의 존재감이란 어떤 것인가를 다시 생각해 보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교회의 예배당 뒤편에는 작은 유치원도 함께 세워져 있습니다. 어느 해인가 교회의 한 청년이 자기 집 거실에 두었던 관상용 열대어 어항을 유치원에 기증해 주고 이사를 가게 되어서 유치원 현관 한쪽 벽면에 그 집 어항을 놓아두었습니다.

유치원을 드나드는 어린이들이 즐겁게 어항 속 열대어들을 바라보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어항을 잘 관리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물고기 밥을 주는 일만이 아니라 정기적으로 어항속 적지 않은 양의 물을 새로 갈아주는 일이며, 바닥의 모래와 자갈을 세탁하듯이 씻어주는 일, 산소 공급기를 청소해 주고, 어항의 유리를 닦아 주는 일들이 정례 행사처럼 되었습니다.

관상용 열대어들은 모양도 색채도 다양해서 매우 아름답고 보기 좋지만 그 중에 검은 색의 조그만 물고기, 모습은 작은 메기처럼 생기고, 다른 물고기들과 달리 입이 앞을 향해 있는 것이 아니라 머리 부분 아래에 흡입판처럼 붙어 있는 청소부 물고기는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어항의 유리 벽면에 붙어 있는 이끼를 먹이삼아서 위아래로 열심히 다니다가 바닥으로 내려앉아 구석에 숨어 버리곤 해서 가끔씩은 어항 속을 열심히 드려다 보고 찾아야 그 청소부 물고기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보게 보게 됩니다.

한번은 어항 청소를 위해서 우선 열대어들과 함께 청소부 물고기 두 마리를 다른 물그릇에 옮겨 담다가 그만 청소부 물고기가 그릇 밖으로 튀어나가는 바람에 한 순간에 두 마리를 잃고 말았습니다.

청소부 물고기 없이 열대어들만으로 어항은 다시 보기 좋게 되었지만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어항의 유리에 이끼들이 끼기 시작하면서 화려한 색채의 열대어들이 어항 속에서 멋지게 노니는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몇 번씩이나 고무장갑을 끼고 수세미로 어항 속 유리벽면을 닦아내곤 했지만 며칠이 지나면 다시 이끼가 끼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정말 그 때까지 청소부 물고기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어항의 유리에 쉬이 끼는 이끼의 원인이 그 물고기가 없는 까닭인 것을 깨닫고 나서야 청소부 물고기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관상용 어항을 관리하는데 있어 사람의 수고를 덜어주는 존재인가를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人間이라는 한자어가 보여주는 것처럼 결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더불어 사는 공동체적 존재로서 사회를 이루고 삽니다. 소년 시절 다녔던 중학교의 사회 선생님께서 로빈슨 크루소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면서 그가 무인도에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문명화된 사회에서 이미 배운 지식과 경험을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진정한 존재감을 지닌 사람은 또래 집단에서 후광이 비치고, 두드러져 보이는 유명 스타와 같은 사람이 아니라 어쩌면 검고 작은 청소부 물고기처럼 평소엔 존재감이 없어 보이지만 그가 자신의 자리를 비우게 되었을 때 비로소 존재가 드러나 보이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 구석구석에는 이름 없이 열악한 환경과 박봉 속에서도 때론 힘겹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을 묵묵히 감당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그러한 사람들입니다.

이제 부활의 계절을 맞으면서 우리는 자신을 비우시고 이 세상에 오셨던 그리스도를 깊이 묵상하는 가운데 진정한 의미에서의 존재감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