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광야 40여년의 장구한 여정을 마치고, 마침내 가나안을 목전에 두었을 때입니다. 모세는 백성들을 향해 가나안에 들어가 살면서 율법을 성실히 지킬 것을 심심 당부합니다. 특별히 우상 숭배에 대한 경계는 거의 협박 수준입니다. “네가 그 땅에서 …스스로 부패하여 무슨 형상의 우상이든지 조각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악을 행함으로 그의 노를 격발하면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얻는 땅에서 반드시 곧 망할 것이다”(신4:25-26). 모세는 왜 이렇게 우상에 대해서 극도로 민감했을까? 율법 때문입니다. “오늘 내가 너희에게 주는 이 모든 율법과 같은 바른 규례와 법도를 가진 위대한 민족이 어디에 또 있겠느냐?”(신4:8). 율법은 우상의 지배에 대응하는 새로운 나라의 이상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 어느 민족도 가지지 못한 하나님의 선물이지요. 모세는 절치부심했습니다. 율법을 힘써 지키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을 진정으로 섬기는 것이고, 따라서 인간답게 사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득히 먼 옛날 공의의 법을 제정했다는 게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모세는 이렇게 율법을 말함으로서 하나님의 의로 통치되는 나라를 갈망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어떻게 하셨는가? ‘내가 율법을 폐하러 온 게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마5:17)고 하십니다. 율법을 볼모로 삼은 위선,아집,독선,차별의 장벽을 깨뜨리고, 본시 율법이 추구했던 하나님의 나라, 공의와 사랑으로 충만한 나라를 세우고자 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우상을 경계한다 하면서도, 공의에 대한 갈망이 없다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율법은 가시적인 하나님으로부터 불가시적인 하나님을 담보합니다. 인간의 고통에 대한 감각적인 응답으로부터 고통의 근원을 성찰하게 함으로서, 참된 해방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만일 우리가 고통 가운데서 감각적인 위로만을 즐겨한다면, 그것이 바로 자기만족의 우상을 불러들이는 행위일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우상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했습니다. 예수께서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하십니다(마6:24). 두 말씀은 공의라는 측면에서 서로 손을 잡고 있습니다.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마6:25).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마6:31). 듣기에 따라, 너희는 개,돼지처럼 살지 말라는 말씀 같기도 합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이방인’을 개,돼지 취급했기에 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겪는 고통은 먹고 입는 것으로부터 옵니다. 더 잘 먹고, 더 잘 입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데서 고통은 가중됩니다. 수익만을 지상 목표로 삼은 기업으로 인해 수많은 노동자들이 자살하는 비극이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더 잘 먹고, 더 잘 살기 위해 수백 수천 마리의 소, 돼지를 집단사육한 데서 구제역과 같은 재앙을 당하는 게 아닐까요? 사람들은 그 나라보다는 눈앞의 더 큰 이익과 고통에만 매달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교회들도 사람들의 욕구에만 응함으로서 탐욕에 기름을 붓고, 인간의 고통을 개별화시켜버립니다. 결과적으로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 할 그 나라는 사라지고, 고통의 뿌리는 더 무섭게 퍼집니다. 그래서 하신 말씀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6:33)고.

예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는 다 내게 오라”(마11:25)고 하셨습니다. 지친 몸과 마음 내게 와서 쉬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지친 영혼 위로받고, 쉼을 얻기 위해 교회를 찾습니다. 그리하여 효과적으로 세상 짐 내려놓고, 쉼을 누리게 하고, 만복을 누리게 해준다는 교회에 사람들의 발길이 번화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쉼은 밤의 질고로부터 아침의 태양을 맞이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쉼만을 구하고, 쉼에만 머물러 있을 때 우상의 먹잇감이 되기 쉽습니다. 부모가 어린 자식을 먹이고 입히며 조건 없는 쉼을 제공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자라서 사람답게 살기를 바라서입니다. 20대가 넘고, 30대, 40대가 훌쩍 넘어서도 부모 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식이라면 분명 골칫거리일 것입니다. 위로는 넘치는데 그 나라에 대한 열망이 없는 교회라면 어떨까요? 역시 하나님께는 골칫거리일 것입니다. 주께서 ‘나 같은 죄인’을 조건 없이 받아주시는 까닭이 무엇일까요? 네 어두운 그림자 넘어 새로운 세계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네 깊은 탄식과 절망에서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네 탐욕의 불꽃을 진정시키고 피눈물 흘리는 누군가를 보라는 것입니다. 그 나라와 그 의를 사모하는 이라야 진정 하나님의 자녀일 수 있습니다. 위로만 구하고, 쉼만을 누리고, 그러면서도 그 나라를 바라지 않는다면 도둑이 따로 없지 싶습니다. 열심이라는 믿음이 마냥 좋게만 보이지 않는 것은 그런 이유도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