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토당토님,

야곱이란 사람이 본래 속임수가 많은 사람이란 것은 잘 알려져 있지만, 귀하의 이런 질문을 받고 보니, ‘큰일 났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성경에 기록된 것은 다 사실이어야 한다는 귀하의 전제도 문제려니와, 야곱이 관련된 “얼룩무늬 새끼” 건은 단순히 야곱의 속임수가 아니라 하나님이 야곱 편에 서서 시키신 것이거나, 그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하나님께서 야곱의 그러한 행위를 긍정하신 것으로 나오기 때문에, 귀하의 질문은 어쩌면, “하나님께서도 거짓말을?” 하고 물으실 수도 있습니다.

기가 막히고 신나는 이런 이야기를 전체적 문맥이나 이 이야기의 해학적 諧謔的 성격을 이해함이 없이 과학적 사실 확인이라는 척도를 가져다 대고 질문을 제기하신다면, 저는 우선 “재미있는 이야기, 그러나 아무도 문자대로는 믿지 않는 이야기”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아직, 그런 이야기가 성경에 적혀 있으면 어떡하느냐고 묻지 마세요!). 다만 저는 한 마디만 더 드리고 싶습니다. 수탈자 收奪者에게서 자신의 재산을 지키려고 하는 야곱의 담대하고 슬기로운 행동에 하나님께서 박수를 보내셨다는 점 말입니다.

귀하께서 이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시고도 같은 질문을 하실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라반이 야곱에게 어떻게 했는지를 귀하께서는 먼저 아셔야 합니다. 야곱이 무려 스무 해를 그의 외삼촌이자 장인인 라반을 위해서 머슴살이를 했지요. 라반의 양떼와 염소 떼를 야곱이 맡아서 돌본 다음부터는 이 목축업이 잘 되어 라반이 부자가 되었지요. 맹수에게 습격을 받아 양이나 염소를 잃으면 야곱은 자기 것에서 보충해 넣곤 했고, 도적맞은 것도 자기 것에서 보충해 넣었지요. 이렇게 머슴살이하기를 스무 해, 그런데, 그의 장인 라반은 품삯을 준다 준다 해놓고도 그 것을 열 번이나 말을 바꾸었습니다.

어디 이뿐입니까! 마지막으로 두 사람 사이에 품삯을 결정했지요. 장인 라반의 가축 떼 중에서 불량품 不良品만 골라서 가지겠다고 야곱이 먼저 제안하고, 라반도 동의했습니다. 야곱의 제안은 장인 라반의 양떼와 염소 떼 사이에서 점박이와 얼룩배기만을 골라 가지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철석같이 약속을 해놓고도 야곱의 장인 라반은 바로 그날로 숫염소 가운데서 줄무늬가 있는 것과 점이 있는 것을 가려내고, 또 모든 암염소 가운데서도 흰 바탕에 얼룩이 진 것과 점이 있는 것과 모든 검은 새끼 양을 가려내어, 자기의 아들들에게 주어버립니다. 야곱은 장인 라반에게 또 다시 속은 겁니다. 그렇게 라반은 야곱이 가지겠다는 불량품마저도 빼돌리고, 이제부터 그렇게 하자고 합니다. 라반은 자기가 직접 기르는 떼와 야곱이 맡아 기르는 떼 사이를 사흘 길의 거리를 두게 하여 서로 섞이지 않게 한 겁니다.

우리의 이야기에서 하나님은 이미 야곱에게 복을 베푸시기로 작정하십니다. 야곱은 몇 종류의 나무를 고르고 그것들에게서 연한 가지를 꺾어 가지에 얼룩무늬가 나게 껍질을 벗기고 그 얼룩무늬 가지를 가축 떼들이 물을 먹는 물구유에 세워서 양과 염소가 그 가지를 보면서 교미를 하게하고, 그것들이 얼룩무늬를 가진 새끼를 낳게 한다는 것입니다. 짐승이 특수한 무늬를 가지게 하려면 그 비슷한 것을 보게 하여 그것을 닮은 새끼를 낳게 한다는 것이지요. 가나안의 목동들의 태교 胎敎 방식의 한 가지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재미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한다고 다 그렇게 되는 건 아니지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개입하여 복을 베푸신다는 사실입니다. 착취당하는 사람이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착취에 대항하여 어떤 조치를 강구한다는 것, 자기가 제공한 노동에 대하여 정당한 대가를 얻어내기 위해 권리 주장을 한다는 것, 거기에 하나님이 개입하실 때, 수탈자는 강한 펀치를 맞고, 케이오 ko패를 당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이지요. 얼룩배기나 점박이를 얻으려고 얼룩무늬 가지를 만들어 암수가 교미하는 자리에 세운 야곱의 “상상력”이나 그것을 가상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놀이”나 다 얼토당토하지 않지요? 얼토당토님, 복은 그렇게 사람에게 오나봅니다. 새해에 복 많이 받으세요!

아참, 귀하께서 한 가지를 더 물으셨군요. 여기 본문에 “껍질을 벗겨 흰 무늬를 냈다”고 했는데, 좀 알기 쉽게 설명해 달라고 하셨지요? 이렇게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를 들어, 초록색 연한 가지를 30센티 길이로 꺾어서, 껍질을 다 벗기는 것이 아니고요, 3센티 간격으로 껍질을 벗기는 겁니다. 그러니까 껍질을 안 벗긴 부분은 초록색 그대로이고, 껍질을 벗긴 부분은 흰색이 나오겠지요. 그래서 초록색 줄 15개와 흰색 줄 15개의 “얼룩무늬”를 낸 것입니다. 얼룩배기가 태어나기를 바라면서요.

민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