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의 뒤를 이은 르호보암이 왕이 되고서입니다. 민심을 살피기 위해 북쪽 세겜에 갔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백성의 대표들로부터 선왕 솔로몬이 짐 지운 노역과 세금이 힘겨우니 경감시켜 달라는 간청을 받게 됩니다. 궁으로 돌아온 르호보암은 신하들에게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자문을 구합니다. 그러자 선왕을 섬기던 원로들은 왕에게 백성들의 청을 받아들일 것을 권합니다. 그러나 패기만만하고 시건방진 르호보암의 젊은 동료들은 왕이 무르게 보이면 백성들이 올라서려고 할 것이니 강하게 나오라고 합니다. 르호보암은 젊은 동료들의 말대로 강하게 나옵니다. 천추의 한이 될 통일 왕국의 분열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당시 원로들은 나라의 지도자들이 귀감으로 삼을만한 명언을 남겼습니다. “왕이 만일 오늘날 백성의 종이 되어 저희를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저희가 영영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왕상 12:7) 왕이 만일 ‘오늘 하루’를 백성의 종이 된다면, 백성들은 ‘모든 날’을 왕의 종이 될 것이라는 뜻으로 새겨지는 말입니다. 물론 ‘오늘 하루’는 단 하루만을 두고 한 말은 아닙니다. 한 나라를 다스려야 할 왕으로서 잠시 동안의 혈기를 내려놓고 백성을 섬긴다면 백성들은 진심으로 왕을 섬기게 될 것이라는 충언입니다.

이 대목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의 모습이 오버랩됩니다. 예수께서는 차라리 당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을지언정 백성들이 버림받지 않기 위해 고통과 능멸을 참아내신 분입니다. 신명기 사가의 은유적인 표현을 빌리면,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달린 그 ‘하루’를 온전히 하나님의 종이 됨으로서 세상 만민이 ‘영원토록’ 당신의 종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를 처형한 백부장은 이런 예수를 향해 “이분이야말로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막 15:39)고 합니다. 이 장면 또한 놀라움으로 다가옵니다. 이보다 앞서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막 8:29)라는 고백을 했음에도, 곧이어 주님의 길을 가로막는 사탄이 된 일이 있습니다. 그로 인해 미완성으로 드러난 그리스도 고백이 십자가형을 집행하는 백부장의 입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거야말로 신비 중에서도 신비입니다. 상식적으로 그리스도 고백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악한 자의 입에서 나왔다는 게 말이 되지 않습니다. 구원의 빛이 예수를 죽인 사형 집행자에게 비취다니!

그러나 악한 자들이 십자가로 인해 변화되지 않는다면, 세상은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마가는 악한 자들이 달라질 수 있는 가능성, 아니 세상이 정말 변화되는 장면을 예수의 십자가에서 보여준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기적, 이보다 더 큰 희망이 따로 없지 싶습니다. 그러고 보면 예수께서 “네 원수를 사랑하라”(마 5:44)고 하신 말씀이 새롭게 와 닫습니다. 원수 사랑이 그리스도인의 덕목이어서가 아니라, 원수도 예수를 십자가에 매단 백부장처럼 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십자가 죽음이 인류를 위한 대속의 죽음이 될 수 있었던 연유가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초대교회가 박해 가운데 있는 성도들을 향해 ‘인내하라’(약 5:7-11)고 했던 것 역시 인내가 그리스도인의 미덕이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로 인한 생명의 역사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맹세하지 말라는 말씀도 마찬가집니다. 맹세는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인 단정에서 비롯됩니다. 나는 선이고 너는 악이라는 단정 말입니다. 통일 왕국 이스라엘이 단 하루도 백성을 섬길 줄 모르는 오만한 지도자로 인해 영영 분열한 것처럼, 오늘날 남북한의 분열도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분열의 요인이 피비린내 나는 전쟁과 살육과 증오심 때문이지만, 분열의 지속도 피비린내 나는 전쟁과 살육과 증오심밖에 돌아올 게 없습니다. 복음이 이 죽임의 구조를 바꾸지 못한다면 복음일 수 없습니다.

명색이 그리스도인이라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만을 보지 말고, 예수를 처형했던 백부장의 변화도 보았으면 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다.’고 ‘신조’에는 열심이면서도, 십자가에 달린 예수로 인해 악에 종사하는 사형 집행관까지 변화되는 놀라운 모습을 보지 못한다면, 영적인 치매로밖에 볼 수 없을 것입니다. 반세기 넘게 분단의 땅에 사는 이들로서, 원수에게로 향하는 시선을 되돌려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창조의 신비를 보았으면 합니다.

주님!
3월이 저만치 지나쳐가도록
아직도 창문을 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꾸짖어 주옵소서.

겨우내 쌓인
나태, 이기심, 단절의 먼지 털어내고
개혁의 봄바람,
평화의 기운 가득한 햇살을
맞아들이게 하소서.

주님!
지각 地殼 사이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를 보면서도
약동하는 생명의 기운을
아직도 느낄 줄 모르는 우리들의
무감각을 일깨워 주소서.

퇴색된 겨울 나뭇가지 끝에 움트는
작은 싹을 보지 못하듯,
온갖 불의와 불평등


독재의 그늘에서 새로운 변혁으로
탄생하시는 당신을 발견치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치 않게 하옵소서.

주님!
갖가지 삶의 아우성과
쾌락의 소리로 가득한 어지러운
삶 속에서
마비되어가는 우리의 청각을
되살려 주옵소서.

잔설 殘雪 밑을 흐르는 계곡 물소리에서
분단의 얼음 녹이고
탐욕과 전쟁의 담 헐어내며
메마른 삶의 가지에
물기 촉촉한 은총으로 흘러내리시는
당신의 발걸음 소리를
듣게 하옵소서.

또 다시 찾아드는 봄이
그저 되풀이되는 주물주의 일상 日常이
아니라
끝없는 창조를 향한
영광스러운 초청임을 깨닫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