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유, 짜증님,

제가 보기에 귀하께서는 성경 본문을 아주 차분하게 정독하시는 독자이십니다. 그런데 서로 다른 번역 앞에서 어느 것이 맞고 어느 것이 틀린 것인지 몰라 짜증을 내셨네요. 누가복음서 기자는 문장력이 참 좋은 기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어로 쓰인 누가복음서에서 이 한 구절이 주석가들이나 번역자를 애먹입니다. (“아, 그래요?”). 그런데 두 번역이 다 맞아요. (“뭐라고요? 다 맞는다고요?”) 또 화나시죠? 찌증도 나고? 저 역시 표현을 모호하게 하는 글쟁이들을 만나면 귀하처럼 짜증이 납니다. 성경 기자라고 해도 예외일 수 없지요.

누가복음서 같은 책은 그리스어로 그 문장이 수려하기 비길 데가 없다고들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문필가가 이러한 모호한 문장을 쓰다니 말이 됩니까? 보시겠어요? 누가복음서 기자는 안나에 대해서는 그의 가문이며, 그의 아버지 이름이며, 그의 예언자 직책이며, 혼인생활 기간이며, 과부가 되었었다는 것까지 상세히 기록하지 않습니까. 한 사람에 관하여 이 짧은 구절 안에서 이처럼 상세하게 진술한 경우는 신구약전서를 통틀어서 안나의 경우뿐입니다.

그런데 어쩌자고 귀하께서 옳게 지적하신 것처럼, 누가복음서 기자는 이렇게 안나가 ‘과부 되고 나서 84년 만에’ 성전에서 아기 예수를 만난 건지([개역]처럼), 아니면, 안나가 ‘84세 때에’ 성전에서 아기 예수를 만난 건지([개정처럼]), 그리스어 본문 자체를 그렇게 모호하게 쓸 수 있단 말입니까?

이러한 진술이 누가복음서 기자의 의도와는 달리, 지난 2천년동안 수많은 독자들을 얼마나 오도했는지 모릅니다. 주석들마다, 번역들마다 안나의 나이를 계산하기에 바빴으니까요.

7년 동안 혼인 생활 했고, 남편과 사별 후 재혼하지 않고 과부로 살다가, 84세에 성전에서 아기 예수를 만났다고 보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개정] [공동번역] [새번역] CEV NJB NLT NRS TEV ....), 7년 동안 남편과 함께 살았고, 남편과 사별 후에 84년을 과부로 살다가 드디어 예루살렘 성전에서 아기 예수를 만났다는 이해도 있습니다(KJV ASV ERV NET....).

후자의 경우는 주석가나 독자들에게 안나가 도대체 몇 살에 아기 예수를 만났겠느냐를 추정을 해보고 싶게 합니다. 그래서 당시 여성의 가임 可姙 나이였을 15세에 혼인을 했다면 (15+7+84=) 106세에 아기 예수를 만났을 거라느니, 그래도 여자가 16세는 되어야 혼인을 하지 않았겠느냐(주석가들이 조금이라도 어떤 근거가 있으면 그것에 따라), 그랬다면 안나가 아기 예수를 만났을 때 나이는 (16+7+84=) 107세였을 거라느니..... 주석가들이 추론한 것을 보면 105세부터 107세를 오르락내리락 합니다. 유딧 같은 경건한 여자가 105세까지 산 적이 있기는 합니다(외경 유딧서 16:23).

이렇게 안나의 나이나 계산하다보니까 정작 안나가 누구이고, 무엇을 했고, 이런 것들은 그냥 쉽게 지나가 버리기 일쑵니다. 남편과 사별 후, 재혼도 마다하고 오직 오실 메시아를 기다리며 성전에서 살다시피 한 그 오랜 세월, 밤낮 기도와 금식으로 하나님을 섬긴 일, 드디어 아기 예수를 만났을 때 아기에게 다가서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 일, 구원을 기다리는 모든 사람에게 아기 예수를 말해주는 일 등은 간과되어버리기도 합니다. 후유! 짜증이 좀 가셨기를 바랍니다.

민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