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을 맞아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산돌관은 홀로 겨울을 맞습니다. 흰 눈이 내리는 날 산돌관은 고요히 하늘의 선물을 받습니다. 조금 외로워 보이지만 슬프지는 않습니다. 아니 그 고요한 자태에서 조금은 즐거운 듯합니다. 그리고 기다립니다. 자기를 찾아줄 사람들을, 깨끗한 영혼을 지닌 아이들과 그 웃음소리를. 가만히 그렇게 산돌관을 보노라면 하느님도 우리를 저렇게 기다리시겠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그와 나 사이에 비로소 시간과 공간이 존재하기 시작했다는 말입니다. 관계를 맺기 이전에는 그도 나도 어딘가에 존재했겠지만 시간도 공간도 없는 ‘없음’입니다. 시간은 관계를 인식할 때 비로소 태어나고, 그 관계의 깊이에 따라 다르게 존재합니다. 아인슈타인도 시간은 그것을 관찰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흐른다고 말했지요. 공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시간은 너무 빨리 흐르고 그와 함께 있는 곳은 빛나는 천국이 됩니다. 싫은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시간은 너무 느리고 그 자리는 고통스런 지옥이 됩니다. 진실로 시공은 관계 안에 존재하고 만남의 깊이에 따라 동전의 양면처럼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집니다. 천국과 지옥을 선택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인 것을 다시 깨닫습니다.

산돌관은 산돌친구들과 관계를 맺고 지금은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낼 때부터, 혹은 아이들을 먼 여행에 떠나보낼 때부터, 빈 공간을 정결하게 만들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떠날 때부터 산돌관과 아이들 사이에는 다시 만날 약속이 정해졌고, 그 순간 그 둘 사이에는 사랑의 시간과 공간이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서로 그 시간과 공간을 좁히고 메워가는 일이 주어졌습니다. 서로의 거리를 좁히는 일, 그것이 기다림이요 사랑입니다. 아이들은 알까요, 산돌관의 이런 기다림을! 우리들은 알고 있을까요, 하느님의 이런 기다림을!

이런 고요한 생각 속에 잠기면, 산돌관은 하늘나라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곳이 하느님 사시는 집, 성전임을 알게 됩니다. 산돌관을 둘러싸고 있는 숲속에 들어갑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걷습니다. 박해조 선생님은 걷는 일을 둘 사이의 거리를 거두어들이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아무 목적 없이 걷는 것 같지만, 최종 목적지는 하느님입니다. 그래서 한걸음을 떼는 일은 몹시도 설레는 일입니다. 발걸음 발걸음이 온통 설레임이요, 감사요, 기쁨입니다. 그 무엇도, 그 어떤 바람이나 욕심도, 내게서 이것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한걸음을 걷고 하늘을 보고 바람을 느끼고 고요한 평온과 행복에 빠져 서있습니다. 숲길은 쉽게 나아갈 수 없습니다. 숲도 나도 산돌관도 하느님이 거하시는 성전이기에 빈들의 주님께서 이랬을까 생각하며 그분과의 거리를 좁혀갑니다. 당신과 나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일, 그것은 삶이 주는 축복이요 우리가 세상에 온 이유 일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부릅니다.

오늘은 집을 정갈하게 청소해보렵니다. 영성의 길은 집을 정갈하게 비우고 정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임을 산돌친구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설레임으로 기다리겠습니다. 누구든 오십시오. 그대가 뜻밖의 복된 소식이요, 사랑이요, 하느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