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부터 정의의 예언자 아모스 이야기를 한다는 게 썩 마음에 내키지 않습니다. 이왕이면 덕담을 듣고 싶은 게 새해를 맞이하는 이들의 소박한 바람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굳이 아모스를 말하는 것은, 오늘 우리의 현실이 아모스 시대와 너무도 흡사하기 때문입니다. 더 하면 더했지 결코 못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모스가 돌이킬 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을 말했던 것은 이스라엘이 궁핍하거나, 비굴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아모스시대 이스라엘은 그 어느 때보다 국내외 정치적 안정 가운데서 번영을 누렸습니다. 그런데 왜 돌이킬 수 없는 심판인가? 정의 없는 번영이 가져온 참담한 결과 때문입니다.

기원전 8세기 북왕국 이스라엘은 활발한 무역과 산업의 융성으로 나라 살림은 윤택하고, 백성들의 삶은 풍요로웠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일어났습니다. 급속한 경제 부흥은 이스라엘 사회에 심각한 모순을 초래했습니다. 국가의 강력한 보호 아래 형성된 신흥부자들과 가난한 이들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도시 자본가들은 넘쳐나는 돈으로 농지를 마구잡이로 사들였습니다. 영세한 농민들은 소작인으로, 농노로 전락했습니다. 지주들은 갖가지 명목으로 소작료를 거둬들여 농민의 생활은 날이 갈수록 피폐해졌습니다. 생산성을 높이려는 지주들의 농업 노동자에 대한 학대가 일상화됐습니다. 수출만을 위한 농업으로 식량 기반이 무너졌습니다. 빈부 격차는 날로 심화됐습니다. 부자만을 위하는 나라가 되면서, 나라의 기강은 해이해지고, 도덕적으로 문란해졌습니다.

번영의 시대인지라, 성소에서는 ‘축제의 예배’를 드린다며, 먹고 마시고 춤추는 관능의 유희로 질펀했습니다. 하나님은 마치 자기들만을 위한 수호신처럼 여겼습니다. 빈부귀천 없이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고자 했던 이스라엘 공동체의 이상은 여지없이 무너졌습니다. 그리하여 아모스는 이스라엘의 심판은 사필귀정으로 피할 수 없다고 한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 초대교회 시대 소아시아에서 도시발전을 위해 황제숭배를 가장 먼저 받아들인 곳은 버가모입니다. 수출확대를 위해 세계에서 미국식 시장경제를 가장 열렬이 신봉하는 대한민국과 다를 바 없었던 것이지요. 당시 황제숭배는 로마에 의한 번영의 보증수표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자연히, 그런 도시에 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상숭배를 불가피한 현실로 받아들이는 풍조가 만연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그들을 향해 하나님의 ‘성별된 백성’임을 망각하지 말라고 경고하십니다(계 2:12-17). ‘성별된 백성’은 하나님의 각별한 사랑 가운데 있는 백성입니다. 동시에 엄중한 심판 아래 있는 백성이기도 합니다. 저 옛날 아모스 시대 성별된 백성 이스라엘이, 그리고 소아시아 버가모교회 그리스도인들이 번영에 영합하여 심판이 예고됐던 것처럼, 물질적 번영에 대한 환상으로 시장경제와 영합한 오늘날 한국의 그리스도인과 교회도 심판을 면할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모스는 심판의 설교 끝에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천막”(암 9:11)을 다시 일으키겠다며 새로운 이스라엘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합니다. 아모스가 말한 ‘장막’은 ‘움막’으로도 번역됩니다. 찬란했던 다윗의 영광스러운 건축물들과 대비시킨 은유로 인간의 초라함이 하나님의 희망임을 각인시키는 표현입니다. 인간이 자신의 업적으로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고 믿는 한 심판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됩니다. 오히려 자신의 무능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구속의 은총과 창조의 능력을 의지할 때 미래는 희망으로 다가옵니다.

우리가 아모스의 설교에서 주목해야 할 게 있습니다. 다윗의 나라를 다시 일으키겠다고 하신 하나님께서 “에돔의 남은 자와 함께 내 이름으로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에돔은 이스라엘의 원수입니다. 하나님께서 원수나라까지 구원하시다니!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려는 목적이 여기에 담겨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은 원수에 대한 배척과 보복을 위해가 아닙니다.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만일 아모스가 하나님의 심판을 통해 지난날 찬란했던 ‘다윗 왕조의 회복’을 바랐다면 그는 국수주의자가 됐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자유와 평등을 향한 공동체의 이상을 구현하는 그 나라의 번영이지, 국수주의에 속박된 나라의 번영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