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니어그램을 공부하면서 먼저 자기를 발견하고 자기 성격 유형을 알고 나면,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적용하여, 그들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중요한 과제로 다가온다. 평소에 사람들 사이에서 살면서 인간관계가 중요한 줄 알면서도 그리 쉽지 않았던 점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인간관계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나이 들면서도 경험에 의해서 아는 정도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데 1970년대에 들어서서 사회심리학과 행동과학에서 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면서부터 ‘감수성 훈련 Sensitivity Training’이 도입되기 시작하였다. 80년대에는 이것이 ‘인간관계실습 Human Relation Laboratory’으로 발전하였고 90년대 이후 ‘인간 잠재력 세미나 Human Potential Seminar’로 발전하였다.

이제 에니어그램이 그 모든 것을 아우르면서 통합적으로 인간관계를 향상시키는 지혜로 각광을 받게 된 배경을 다시 생각한다. 그 까닭이 있다. 이제까지 인간관계를 향상시키려는 모든 노력이 어떻게 하면 그것이 가능한가를 탐구하며 가르쳤다. 인간관계를 향상시키는데 필요한 일들을 살핀다.

· 역지사지 : 서로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는 것

· 감정이입 또는 공감 empathy : 상대방의 마음속에 들어가서 느끼는 것

· 배려 : 상대방의 유익이나 입장을 먼저 고려하는 것

· 관용 : 상대방의 잘못이나 흠을 너그럽게 보는 것

· 뜨거운 동정심 compassion : 상대방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느끼며 받아들이는 것

· 겸손 :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며, 상대방의 장점을 먼저 생각하는 것

· 봉사 : 상대방을 편하게 대하며 위로하며 힘을 얻게 하는 것

· 황금률 golden rule :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는 것

이런 정도 나열해 놓고 봤을 때, 누구라도 말처럼 이 모든 것을 실행할 수 있다면, 인간관계가 수월해지고 향상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이 좋은 말과 덕목이 실행되지 못하는 데 있다. 설령 실행하여 개선되었다가도 얼마 안가서 이전 상태로 돌아간다. 인간관계 향상을 위한 노력들이 여기서 한계에 부딪쳤던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에니어그램은 그 한계를 극복하도록 도움을 준다. 이를테면, 그토록 좋은 연구의 결과로서 탁월한 이론과 방법과 덕목이 실천될 수 없게 만든 원인이 무엇인가를 에니어그램이 밝히면서, 그 문제의 고리를 풀도록 돕는 것이다.

에니어그램은 이 문제의 핵심이 ‘격정 passion'이라는 점을 밝혀준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의 격정 때문에 좋은 지혜와 덕목을 알고도 실천하지 못한다. 누구나 격정에 사로잡히면, 하고자 하는 좋은 일은 하지 못하고, 하지 않으려고 마음먹는 것 즉, 안 좋은 일은 한다. 이런 격정을 아는 것도 일반화시켜서 객관적으로 아는 데서 그치니까 문제다. 각자의 독특한 격정이 무엇이고 또 그것이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정확히 아는 것이 관건이다.

따라서 에니어그램을 배우기 이전과 이후가 확연히 구분된다. 먼저 격정에 관한 이해와 자세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인간관계 속에서 사람들은 대체로 자기-중심적으로 사니까 자기의 격정은 못 보면서 상대방의 격정을 잘 본다. 그 때, 그 격정은 약점으로 감지되니까 그 약점으로서 격정을 이용한다. 이로써 짧게 봐서 단기적인 목표를 달성하거나 이득을 볼지 모른다.

그러나 길게 보거나, 궁극적으로 보면, 격정을 이용하면, 설령 물질적 또는 현실적 목표는 달성할지라도, 결국은 인간관계를 그르칠 수밖에 없고, 그보다 먼저 자기 자신의 에너지는 줄어들거나 잃어버리게 된다. 그래서 작은 것은 얻고 큰 것을 잃고 퇴화하는 어리석은 결과에 이르게 된다.

격정을 알았으면, 먼저 그 격정으로부터 벗어나서 덕목으로 옮겨가도록 도울 일이다. 그리고 그 격정과 연결된 특징으로서 선악을 이해하고, 기본적 공포와 기본적 욕망이 무엇인지, 특징적 유혹 또는 함정이 무엇인가를 상기하며, 어떤 경우에라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도와야 한다. 선을 살리고, 공포에서 벗어나고, 욕망을 이루고, 유혹을 이겨내면서 아름다운 덕목을 이루도록 돕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상대방에게 힘을 북돋우어주고, 덕목을 살리도록 도움을 주는 것은 물론이요, 자기 스스로 해방되고 힘을 얻고 변화하고 성숙하게 된다.

상관관계 속에서, 내가 먼저 내 자신의 격정을 알았으면, 그 격정을 꽉 잡고 통제하여야 한다. 그러면 자연히 나 자신의 덕목을 살리게 된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어떤 경우라도 밖으로부터 오는 힘에 의하여 내가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가까운 사이에서도, 상대방이 바뀌거나 잘 하기를 기대하기 전에, 내가 상대에게 원하던 것을 내가 먼저 한다. 예를 들어, 상대가 바뀌기를 바랐다면, 내가 먼저 바뀌는 것이다. 상대가 격정에서 벗어나서 덕목을 살리기를 바랐다면, 내가 먼저 격정에서 벗어나서 내 덕목을 살리는 것이다.

완전주의자인 #1번 유형이 #2번 유형을 만난 때, 격정에 사로잡혀서 남을 돕는 것을 보면, 먼저 #2번 유형의 필요를 간파하여 충족시키고 사랑받고자 하는 기본 욕망을 채워줄 때 #2번 유형은 부드럽고 우아하며 로맨틱해진다. 그 때 #1번은 따듯하며 평정을 이루는 사람이 된다. 그러면 피차에 행복감을 높이고 에너지는 넘치게 된다. #1번은 독선적 분노를 잠재우고, 지혜를 살리며, #2번이 허영과 자만에서 벗어나 사심 없는 자선을 베풀며 사랑받는 사람이 된다.

이와 같이 각기 에니어그램의 선악, 기본적 공포, 유혹, 욕망과 함께 격정과 덕목을 상기하면서 긍정적인 통합의 방향으로 이행하도록 노력할 때, 성격이해를 긍정적으로 응용하며 인간관계 향상에 이바지하게 된다. 그래서 더불어 건강과 자유와 행복으로 옮겨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