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에 뉴스를 보다가 놀랐습니다. 지난 여름, 연변에서 에니어그램 인성 교육을 시작한 첫날이었습니다. 21명의 한국인 봉사단이 탈레반에 납치되었다는 뉴스였습니다. 놀람과 충격 속에서도, ‘올 것이 왔구나’ 생각이 들었던 것은 왜였을까요? 이슬람권에 들어가서 봉사를 한다면, 이슬람권의 시각에서는 그것을 봉사의 차원보다는 전도 내지 선교의 차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오히려 당연할 것입니다. 나와 다른 것에 대하여 열린 마음이나 유연한 수용성이 부족한 사람이라면,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사람이라도 의구심이나 경계심을 갖기가 쉬운 법입니다.

2천 여년 기독교 역사 속에서 다른 문화권 속에 들어갈 때면 늘 전도가 앞섰고, 선교나 봉사는 부수적이거나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왔습니다. 1973년 초에 있었던 ‘오늘의 구원 Salvation Today’ 선교대회 당시, 선교를 강조하는 이들과 전도를 강조하는 이들이 격돌하며 불꽃 튀는 논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 흐름이 1990년 3월의 ‘서울 선언’을 통해서 JPIC-정의, 평화, 창조의 보전-세계대회에서 화합을 이루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같은 종교 안에서도 이른바 신앙노선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반목은 풀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같은 종교 안에서조차 배타성과 공격성을 여지없이 드러내곤 합니다.

이제 뒤늦게라도 살아남은 19명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게 된 것은 천만다행입니다. 그러나 고귀한 목숨을 잃은 두 형제를 기억하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유족들이 장례식을 유예하기까지 하면서 나머지 인질로 잡힌 자매형제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며 기도했던 갸륵한 마음은, 고인이 된 배형규 목사님과 심성민 형제의 희생 못지않게 고귀한 것입니다.

세계의 관심과, 기도가 오랫동안 지속된 것도 고마운 일임과 동시에 그만큼 안타깝고 유감스런 일이기도 합니다. 정부와 교회와 관련자 모두가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현지 사정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턱없이 모자라서 추측이 무성하였고, 따라서 염려의 수준을 넘어 찬반양론이 달아오르기도 하였습니다.

모두의 관심이 집중된 뜨거운 이슈였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세상에서는 잊혀지겠지만, 그 여파는 간단하지 않을 것입니다. 19명의 무사귀환을 감사함과 아울러 우리 모두가 되짚어 보면서 추슬러야 할 문제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질들의 생명에 대한 관심 때문에 요청되었던 ‘밤낮 사십일의 고뇌’ 이상 가는 깊은 고뇌가 우리 모두에게, 특히 선교 정책을 수립하고 수행하는 이들과, 정부 및 외교담당자들에게 절실히 요청됩니다.

국제사회의 우려를 고려하였을 터이지만 테러리스트와의 대면협상에서 타협한 선례를 남긴 것이 앞으로 우리의 외교와 나아가서는 국익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애초의 계획보다 앞당겨서 철군하기로 약속한 것이 우방과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그리고 아프간에서의 선교금지를 조건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선교라면 순교도 각오하고 나서는 이들로서는 어떻게 정서적으로 용해하고 소화해야 할지, 모두가 간단치 않은 문제들입니다.

이런 협상의 결과로 한국인의 지도에서 아프간이 지워진 결과를 앞으로 어떻게 회복하고 정상화시킬 것인지 하는 것 또한 고뇌해야 할 문제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가 어떻게 성찰하고 교훈과 지혜를 얻는가 하는 것입니다. 전도와 선교를 앞세우지 않고, 타문화와 타종교에 대하여 먼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배우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사랑은 자기를 내세우지 않습니다. 먼저 자기를 내어주어야 합니다. 내어준다는 생각도 없이 내어주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경쟁 위주의 치열한 사회 속에서 살아온 습관이 몸에 배어서, 봉사자로 나설 때에도 무의식적으로 시혜자로서의 우월감을 암암리에 드러내기 쉽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무신경 때문에 열등감 내지 소외감을 자극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봉사가 될 수 없습니다. 이는 어느 곳에서라도 봉사자가 빠질 위험이 큰 함정입니다.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임해야 ‘비둘기처럼 순하고, 뱀처럼 지혜로울’ 수 있을까요? 우리 모두 깊은 고뇌 속에서 지혜로운 사랑의 방법을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