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번민하는 사무엘

‘사무엘은 늙자, 자기의 아들들을 이스라엘의 사사로 세웠다’(삼상 8:7). ‘그러나 그 아들들은 아버지의 길을 따라 살지 않고, 돈벌이에만 정신이 팔려, 뇌물을 받고서, 치우치게 재판을 하였다’(삼상 8:4).

평생을 신실하게 살며 백성의 존경과 신뢰를 받았던 사무엘로서는 무척 괴롭고 불편하였을 것이다. 큰 지도자 사무엘이 자식을 잘못 키웠다는 자책도 하였을 것이다. 공인으로서 자기의 아들들을 사사로 세운 데 대하여 책임감도 컸을 것이다. 사무엘의 번민과 고뇌가 얼마나 컸을까 짐작이 간다.

새로 세운 사사들이 부정과 부패로 얼룩지자 민심이 흉흉하였다. 그 결과,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가 모여서, 라마로 사무엘을 찾아갔다. 그들이 사무엘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어른께서는 늙으셨고, 아드님들은 어른께서 걸어오신 그 길을 따라 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모든 이방 나라들처럼, 우리에게 왕을 세워 주셔서, 왕이 우리를 다스리게 하여 주십시오”(삼상 8:4-5).

사무엘은 ‘장로들의 말에 마음이 상하여, 주님께 기도를 드렸더니,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백성이 너에게 한말을 다 들어 주어라. 그들이 너를 버린 것이 아니라, 나를 버려서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한 것이다”(삼상 8:6-7). 아들들의 그릇된 행태 때문에 번민하는 사무엘에게 장로들은 더 큰 번민을 안겨 주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괴로운 심정을 아시고 사무엘을 위로하신다. 장로들의 청을 들어주라고 하실 뿐 아니라, 장로들이 버린 것은 사무엘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라고 밝히신다.

늘 하나님 앞에 신실하던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위로를 받기보다는 하나님을 생각하여 더욱 괴로웠을지 모른다. 자신이 못난 아들들을 사사로 세운 결과가 이 지경에 이르렀고, 하나님이 왕이 되시어 다스리시는 신정 Theocracy이 거부당하는 상황이 되고 보니 사무엘은 하나님께 죄송한 마음이 컸으리라 본다.

아버지가 건강하지 못하면, 자식이 잘못하는 일을 부추기지는 않아도, 그대로 묵인하고 만다. 불의에 둔감하면서 돈과 뇌물이 들어오는 것을 반길 수 있다. 그러나 아버지가 건강하고 정의로우면, 자식의 잘못 때문에 번민하게 되고, 하나님을 더욱 두려워하기 마련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번민하는 사무엘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사무엘의 고뇌를 인정하신 하나님께서 이제는 왕정 시대가 열릴 것을 허락하신다. 그러나 ‘왕의 권한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려 주어 경고하라고 명하신다’(삼상 8:9). 이렇게 결정적인 단계에 들어서면서, 한편으로 정리가 될 법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 불편한 심기가 남아 있었을 것이다.

#3번 유형들은 목표 의식이 남달리 강하고, 성취욕도 강하다. 반면에 자신의 뜻이 거부당하거나, 더욱이 자신의 존재가 배척당한다 생각하면 가장 견디기 어렵게 된다. 인정욕구가 강하고, 남에게 수용되고 인정받는 것을 기본적 욕망으로 지니고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무엘은 하나님을 생각하기에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 신실한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큰 번민에서 벗어나, 체념하고, 마음을 정리하였다. ‘그래서 사무엘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각자 자기의 성읍으로 돌아가라고 일렀다’(삼상 8:22). 그러나 먼저 왕정으로 인하여 백성들이 ‘울부짖을’ 날이 올 것을 경고해 두었다(삼상 8:18).

4. 다윗 왕을 세우는 사무엘

마침내 이스라엘의 첫 임금을 세우는 날이 다가온다. ‘잘생긴 젊은이’ 사울이 등장한다.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그보다 더 잘생긴 사람이 없었고, 키도 보통 사람들 보다도 어깨 위만큼은 더 컸다’(삼삼 9:2). 그야말로 기골이 장대한 데다 빼어난 미남이었던 모양이다. #3번 유형은 어려서부터 엄마의 인정과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기 때문에, 언제나 남에게 인정받고 사랑 받으려는 욕망이 크다. 그래서 얼굴에 에너지가 나타나기 때문에 탄력이 있고 입꼬리도 붓끝으로 그린 듯 하며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다. 필경 사울도 이런 유형이었을 것으로 이해한다.

사울이 아버지 기스가 잃어버린 암나귀를 찾아 나섰다가 사무엘을 만난다. ‘사울이 오기 하루 전에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알리셨다.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나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워라’(삼상 9:15). 그래서 사무엘은 ‘기름병을 가져다가 사무엘의 머리에 붓고’(삼상 10:1) 영도자로 세웠으며 결국 미스바 성회로 모인 백성들에게 사울이 왕으로 뽑혔다.

그리고 나서 사무엘이 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고별사를 하였다(삼상12장). 젊어서부터 평생토록 백성을 지도한 사무엘이 자기 행적에 대하여 말하고 나서 ‘당신들이 나에게서 아무런 잘못도 찾지 못한 것에 대하여 오늘 주님께서 증인이 되셨고, 주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왕도 증인이 되셨습니다’(삼상 12:5).

백성의 지도자가 이런 고별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은 크나큰 은총이요 축복이다. 그의 신실함이 이보다 더 웅변적으로 증명될 수는 없을 것이다. 사무엘은 그러나 신실하지 못한 사울 때문에 또 다시 괴로움을 겪는다.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이 후회된다. 그가 나에게서 등을 돌리고, 나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 그래서 사무엘은 괴로운 마음으로 주님께 부르짖었다”(삼상 15:11).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은 ‘사울 때문에 마음이 상하여, 죽는 날까지 다시는 사울을 만나지 않았다’(삼상 15:35).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것을 후회하신 주님께서 ‘사울이 다시는 이스라엘을 다스리지 못하도록, 내가 이미 그를 버렸다’(삼상 16:1)고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새의 아들 가운데서 왕이 될 사람을 한 명 골라놓았다’(삼상 16:1)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위기를 느낀 사무엘은 여쭈었다. ‘내가 어떻게 길을 떠날 수 있겠습니까? 사울이 이 소식을 들으면, 나를 죽일 것입니다’(삼상 16:2). #3번 유형들은 임기응변에 능하기에 자칫 선을 넘으면 기만하게 되고, 그러지는 않을지라도 매우 타산적으로 보일 수 있다.

사무엘이 다윗을 왕으로 세우려고 가는 길에 주님께서 방법을 일러주시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사람들에게 나타나 보이는 사무엘의 행동은 영락없는 #3번 유형의 행태이다. 신실한 #3번이라도 위기 상황에서는 전략적 사고와 행동이 얼른 나온다.

기골이 장대한 미남 사울을 왕으로 세웠던 사무엘이 또 한번 이새의 아들 엘리압을 마음에 두었을 때 주님께서 일러주신다. ‘준수한 겉모습과 큰 키만을 보아서는 안 된다’(삼상 16:7). 그래서 다른 아들들을 다 보고 나서 마침내 막내아들 다윗을 데려오게 하여 만난다. ‘그는 눈이 아름답고 외모도 준수한 홍안의 소년이었다’(삼상 16:2). 그래서 주님의 지시대로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다.

사무엘은 신실하게 살아온 #3번 유형의 본보기라 할 수 있다. 죽을 수도 있는 위기를 헤쳐 나오는 과정에서 속임수는 아니더라도 문제 안 생길 방도를 모색하였다. 그러나 ‘진인사 대천명’ 盡人事待天命의 자세로 신의 뜻에 맡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