볍씨 아이들은 같은 나이의 친구들끼리 모여서 지내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언니 동생들이 어우러져 공부하는 시간을 많이 갖습니다. 그런 시간들을 앞두고 있을 때면 아이들은 이 방 저 방 자기가 선택한 활동이 펼쳐지는 곳으로 부지런히 옮겨 다닙니다. 때론 손에 필통이나 작은 가방(여기엔 활동에 필요한 소품들이 들어있지요.)을 달랑달랑 들고서. 그렇게 한 공간에서 큰 아이 작은 아이들이 복닥거리면서 꽤 긴 시간 동안 배움에 몰두합니다. 그러다 4-5학년, 7-8학년(중 1-중 2) 때에는 2년 동안 아예 학년 구분 없이 생활을 함께 합니다.

동생들한테 훈수를 두며 언니 노릇을 하려는 아이도 없진 않지만, 아이들은 보통 언니니 동생이니 하는 것을 크게 염두에 두지 않고 관심이 통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당연시 합니다. 그러면서 배움 과정이 나이로 구분되거나 제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갑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자기 본성과 능력을 찾아가고 새로운 것을 익히는 속도가 다 다릅니다. 아이들은 자기만의 속도에 맞게 배우고 성장할 권리가 있습니다. 또 성장의 여정에서는 나이를 떠나 서로 가르치고 배우며 협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볍씨에선 연령을 넘나들며 여럿이 함께 배우는 기회를 늘리려고 하고 있지요.

배울 거리를 선택하고 새로운 모둠을 구성하는 시기가 되면, 아이들은 다소 긴장과 흥분 상태로 돌입합니다. 아이들한테 ‘내가 무엇을 배울 것이냐’ 하는 것도 문제지만 ‘누구랑 함께 할 것이냐’도 매우 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모둠 속에서 마음에 꼭 맞는 사람을 발견하고 좋아라 하는 경우도 있고, 기대치 않았던 갈등으로 힘겨워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1년을 지내다 보면 적어도 그 모임에 함께 했던 언니나 동생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게 됩니다. 그 친구가 진정 어떤 녀석인지를 말이죠. 새로운 역할을 경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반 안에서 지낼 때에는 수동적으로 따라가기만 하던 친구도 새로운 구도 안에선 좀더 적극성을 보이기도 하고 리더십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또 반에서는 타협을 잘 하지 않고 중심에만 서려고 하는 아이가 양순하고 수용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요. 그렇게 아이의 새로운 모습 또는 진정한 모습이 드러나는 과정에서 성장의 계기가 좀더 많아집니다.

최근 온전한 인간상 또는 공동체를 이루는 방편으로서, ‘통합’이 여러 분야에서 자주 화두로 떠오르곤 합니다. ‘통합’이 여러 가지 문제들을 풀 수 있는 해결책으로 이야기되고, 그걸 지향해야 한다고들 합니다. 대안학교도 아이들이 몸과 감성과 지성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고 조화를 이루며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들 속에서 태어났지요. 앞에서 이야기한 ‘연령 통합’뿐 아니라, 이 세상의 진리는 파편처럼 하나하나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믿음 아래에서 ‘교과 통합’을 시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이들과 달리 성인인 교사나 부모들은 조각조각 분화된 사회에 사는 것이 익숙한 탓인지, 막상 대안학교 안에서도 통합을 이루어내기란 썩 쉽지 않습니다. 통합을 하면 작은 아이가 큰 아이들 기에 눌리지 않을까, 배우는 내용이 하향평준화 되는 게 아닐까, 이것도 저것도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게 아닐까, 우리 아이가 새로운 실험의 희생양이 되는 게 아닐까, 이런 저런 불안과 의심이 모락모락 피어나니까요.

이런 불안과 의심은 가볍게 넘길 것도 아니고, 그에 걸려 넘어져서 주저앉을 것도 아닙니다. 통합이 선한 방향으로 이루어지려면 이전에 보지 못했던 과정을 도전하기 위한 용기도 필요하지만, 배울 거리의 핵심과 배워나가는 과정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 아이들 역동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각자의 성장점을 자극해줄 수 있는 주의력과 판단력과 실천력도 요구됩니다. 그게 없으면 통합은 헛된 망상이 되고 맙니다. 우려가 현실이 돼서 실패를 하다가 통합은 실제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거나 잘못된 것이라고 오판하거나 합리화하는 함정에 빠질 수도 있겠습니다.

‘통합’은 여러 가지 경계에서, 궁극적으로는 세계에 대한 왜곡된 시선과 자아라는 틀에서 해방되어 온전함을 이루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통합’에 대한 작은 경험들이 축적되고 그를 지향하는 여러 현장의 경험들이 서로 공유되어서, 꿈이 현실화되는 과정이 촉진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