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순, 공동체성서연구

 

 


8/2011

 

 

 

 

 

 

 

 

 

 

 

 

에니어그램영성(125)

 

# 9번 유형 : 바나바

 

 

 

 

 

  에니어그램으로 보는 성서 인물

 

 

 

 


영성생활에
도움이 되는 글

제공 :
공동체성서연구원


에니어그램 격언






 


1. 듬직한 사람, 바나바

평화주의자로 자라나는 #9번 유형들은 대단한 에너지를 지니고 살면서도 편안하다. 그래서 강인하면서도 겉보기에는 편한 까닭에 듬직하다. 성서 인물들 가운데 바나바처럼 공을 세운 사람도 흔치 않건만 특별한 관심을 갖고 깊이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가 쉽다.

#9번 유형은 똑똑하고 잘생긴 사람조차도 남의 눈에 잘 뜨이지 않는다. 뭐든지 속으로 끌어들이며 간직하되 드러내지 않으려는 속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흔히 셋을 지니고도 열의 효과를 살리는 타입이 있는가 하면, #9번 유형은 열을 가지고도 셋을 쓰는 것 같은 인상을 줄 수 있다. 바나바가 그런 유형의 대표처럼 보인다.

초대교회로부터 많은 세월이 흐른 이유도 있으나 바울처럼 두드러진 인물이 조명을 받은 것도 바나바가 가려진 이유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처음 교회에서는 바울이 설 자리를 마련한 사람도 바나바였다. 바울이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빛 가운데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새로운 소명을 받았다. 그러나 그가 워낙 극심하게 교회와 신도들을 박해하였기 때문에 그가 ‘거기에 있는 제자들과 어울리려고 하였으나…모두들 그를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그를 옹호하고 지지한 바나바가 보증하였기 때문에 예루살렘 교회가 그를 받아들였고, 나중에 바나바와 함께 선교사로 파송받기에 이른다(행15:26 - 27).

본디 키프로스 cyprus 태생의 유대인인 바나바는 양친부모의 사랑을 넉넉히 받고 자란 사람으로 레위 지파였다. 어릴적 이름은 요셉인데 사도들이 그에게 바나바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바나바는 bar nabas 곧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아람어로 표기하면 bar nabya 곧 ‘예언의 아들’ 이라는 뜻이 된다. ‘예언하는 사람은…덕을 끼치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을 합니다’(고전14:3) 라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위로와 예언이 하나로 만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사도들에게서 인정을 받은 바나바가 당시 자기 재산을 팔아서 교회와 선교를 위하여 헌금한 사람들의 대표처럼 성경 기록에 남아 있다.(행4:37) 교회의 신임이 그만큼 두터웠던 것을 생각하게 된다. 그는 명실공히 ‘위로의 아들’이었다. 잘 나서지는 않아도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편하게 다 하니까 지도자로 세움을 받고 추대되는 타입이다.

결국 바나바는 중책을 맡게 된다. 안디옥 교회가 발전하면서 신자가 나날이 늘어나게 되자 ‘예루살렘 교회가 이 소식을 듣고서, 바나바를 안디옥으로 보냈다.’(행11:22). 여기서도 큰 역할을 하여 ‘많은 사람이 주님께로 나왔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행11:24) 고 묘사되어 있다.

지도자의 성격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여기서도 되짚어 보게 된다. 대개 지도자가 되면 지도력과 함께 지위도 강화시키고 파워도 독점하려는 속성이 나타난다. 그러나 바나바는 자신의 지위와 역할이 커졌을 때, 자신보다도 하나님의 일과 교회를 먼저 생각한다. 일의 막중함을 생각한 ‘바나바는 사울을 찾으려고 다소 Tarsus로 가서, 그를 만나 안디옥으로 데려왔다’(행11:25- 26).

‘두 사람은 일 년 동안 줄곧 거기에 머물면서, 교회에서 모임을 가지고, 많은 사람을 가르쳤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 불리우기 시작한 것도 여기서의 일이었다. 바나바는 요즘 우리가 말하는 비권위주의적 인성 non-authoritariam personality이요 지도력의 공유와 네트워킹을 소중히 여긴 정말 듬직한 지도자였다.

2. 끈기있는 사람

착한 사람들에게는 참을성과 끈기가 있다. 어려운 일도 잘 견딘다. 커다란 장점이다. 그래서 곁의 사람들이 믿고 의지할 만하다. 넉넉함이 있다. 지도자가 지니면 좋은 점이다. 바나바가 그런 사람이었지 싶다. 남들이 경계하거나 싫어하는 사람도 여전히 편하게 대한다. 단점이 나타나거나 실수를 저지른 사람까지도 ‘그러려니’ 또는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 너그러이 받아들인다.

바나바에 대한 기록이 많지 않은데도, 그 짧은 글에 나타난 모습은 건강한 #9번 유형의 대표라 할 만 하다. 예루살렘 교회나 안디옥 교회 어디서도 신임이 두터웠고 너그러운 모습이었다. 사울처럼 교회를 박해하였고, 첫 번째 순교자 스데반이 돌에 맞을 때에도 마치 사령집행관처럼 지켜봤던 그를 예루살렘 신도들이 두려워하였을 때에도, 바나바가 사울을 사도들에게 데려가서 변론하며 보증해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경계하는 인물을 감싸줄 뿐만 아니라, 보증하고, 나아가서 중책을 공유하며 동역자가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바나바 같은 사람이니까 가능하였던 것이다. 심지어 바울이 선교 여행에 함께 ‘데리고 가는 것을 좋게 여기지 않았’던 ‘마가라는 요한’을 바나바는 함께 배를 타고 데리고 가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만사에 양면이 있듯이 #9번 유형의 끈기있는 성격의 이면을 보면, 끈기와 함께 관성 inertia의 법칙이 작용하기 쉽다. 타성과 느림과 나태와 답답함과 고집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갈등을 기피하는 속성이 작용하고, 나태라는 격정을 어찌 다루는가에 따라 큰 차이가 난다. 바나바가 마가를 옹호할 때 바울은 몹시 답답했을지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심히 다툰 끝에, 서로 갈라서고 말았다.’(행15:39).

완전주의 성격인 바울이 실수에 대하여 비판적이고 엄격한 반면에 바나바는 대조적으로 너그럽게 참으며 마가의 장점을 살리려는 데 역점을 두었던 것이다. 바나바가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과 신도들 앞에서 바울을 옹호할 때, 바나바를 답답하게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을 가능성을 당시에 바울은 생각하지 못하였던 듯싶다.

바나바처럼 건강하게 살던 #9번 유형도 되도록 갈등을 피하려다 본의 아니게 잘못을 저지르거나 난처한 입장에 빠지기도 한다. 마가를 옹호한 면을 달리 보면 사촌 동생인 마가를 옹호하다가 더 큰 선교 사명을 감당할 동역자와 갈라서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비판을 받을 여지도 있었다. 신학자들의 견해 가운데 토라 해석의 차이가 숨은 동기로 작용했다는 것도 말은 된다.

일설에 의하면 바나바와 바울은 가말리엘의 같은 문하생이었다고 한다.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에서 중책을 맡았을 때에도 멀리 다소까지 찾아가 바울을 영입한 것을 보아도 각별한 인연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갈등이 생겼을 때, 더 오래 함께 살아온 마가와 갈라선다는 것이 더 힘들었을 수도 있었겠다. 분리불안이라 하겠다.

#9번 유형들이 스트레스를 받을 경우에 #6번 유형의 걱정과 공포 그리고 권위 있는 사람의 판단과 행동에 의존적으로 따르는 경향이 있다. 사적인 일은 잘 처리하는 사람까지도 개인의 판단만으로는 결정과 행동이 어려울 때 더욱 그런 속성이 나타난다. 힘있는 사람이나 지도자 또는 어른 편에 서는 것이다.

초대 교회에서 이방인 신자들을 대하는 일에서부터 율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일은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민감한 문제였다. 베드로가 안디옥에 왔을 때 ‘이방 사람들과 함께 음식을 먹다가’ ‘할례받은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그 자리를 떠나 물러난’(갈2:12) 일이 있었을 때, ‘바나바까지도 그들의 위선에 끌려’갔다(갈2:13)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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