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볍씨가 언제 생겼지요?”
아이들과 콩국수를 만들어 먹으려고 콩을 폭폭 삶고 있는데, 3학년 아이가 묻습니다.
“2001년”
“볍씨가 나보다 한 살 더 많네.”
‘어! 그런가?’
잠깐 생각해보고
“그러네. 볍씨는 나무반(올해 4학년 아이들)이랑 나이가 똑같지.”

볍씨는 올해로 문을 연 지 11년째에 접어듭니다. 대안학교들 사이에서는 개중에 오래된 학교라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하지만 11살은 아직 철들기엔 이른 나이이지요. 그래서 볍씨는 여전히 함께 고민하고 풀어나가야 할 이야기들을 많이 안고 있습니다. 그런 이야기들은 아마도 꽤 오랜 동안 되풀이될 것이고, 실패하고 성공하는 경험들을 반복하면서 볍씨는 점점 더 성숙해 가겠지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볍씨의 처음은 지금보다도 더 작았습니다. 그 땐 학교 건물이 따로 없었고, 아이들은 열두 명뿐이었습니다. 하지만 함께 한 사람들의 마음은 참 컸으리라 짐작합니다. 요즘에 볍씨를 찾는 사람들도 나름대로 자기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고 용기를 내야 하지만, 그 땐 “대안학교요.” 하면 “대한학교라고요?”라는 반문이 돌아올 정도로 대안학교에 대한 사회적인 인지도가 낮았고 실제 사례가 거의 없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대안학교 한 번 해 보자!’ 하고서도 두려움이 클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런 두려움을 넘어서 스스로 길을 묻고 스스로 개척하고 스스로 꿈을 실현해나가는 과정이 호락호락하지 않은 만큼, 마음을 크게 내놓고 씨름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볍씨 초창기엔, 먼 훗날 돌아보면 지금 역시 초창기이겠지만, 새로움에 대한 갈망, 열정과 도전 의식, 정체성을 찾으려는 몸부림, 내 선택이 맞을까 하는 의구심 속에서, 서로 부대끼고 뭉쳤다가 흩어지기를 수차례 하며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한 달에 몇 번씩 모여서 삶과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가르치고 배웠던 시절인지라, 때로 몇몇 분들은 그 당시를 회상하며 그 때가 더 좋았다는 말씀을 하시곤 합니다.

한 해 한 해 가면서, 비닐하우스나 컨테이너 같은 것들이 하나씩 둘씩 볍씨에 들어왔습니다. 번듯한 건물이 아니다보니 해마다 손봐야 하는 일들이 적지 않았어요. 새로 공간을 하나 낼 때마다 또 보수할 거리가 있을 때마다, 볍씨 어른들이 직접 나와 삽을 들고 땅을 파고 흙을 나르고 미장일을 하고 외벽을 칠하고 도배를 했습니다. 또 나무를 심어 가꾸고, 땡볕에 벽돌 길을 깔기도 하고, 밭도 일구었지요. 또 온갖 풀씨가 날아와 자리를 잡아서, 볍씨는 냉이, 꽃다지, 질경이, 민들레, 달맞이, 지칭개, 토끼풀, 뽀리뱅이, 개망초와 같은 다양한 풀꽃들이 철마다 나고 지는 곳이 되었습니다. 이태 전엔 볍씨 한 편에, 선생님 둘이 손수 제작한 풍력 발전기와 자전거 발전기,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해 두었습니다.

사람들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일단 아이들 수가 늘었습니다. 이젠 100명 가까운 아이들이 볍씨 안에서 지내고 있고, 볍씨를 졸업한 아이들도 생겼습니다. 또 아이들이 성장하고 있습니다. 지난 5월에는 올해 성년을 맞은 졸업생 아이 둘이 자리를 마련해서, 성인으로서 한 발자국 나아가는 것을 축하받고 볍씨 사람들한테 고마움을 표하는 시간을 가졌더랬어요.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어른들은 ‘우리가 꿈꿨던 대안교육이 무엇이었던가’ 냉철하게 다시 보게도 되었고, 때론 아이들 앞에서 부끄러움과 긴장감을 느끼며 스스로의 삶을 반추하게도 되었습니다. 한편, 주를 이루는 어른들의 세대가 바뀌어 학교 문화나 분위기가 조금 달라지기도 했습니다.

10년 뒤면 볍씨는 또 많이 변해 있겠지요. 작년에 보금자리 지구에 선정되었으니 앞으로 터전을 옮겨야 하고, 아이들은 또 열심히 자라서 지금 1학년 꼬맹이들이 볍씨의 품을 떠나 있겠습니다. 또 세상이 바뀌고 사람들의 가치관이나 생활양식도 바뀔 테니 ‘이 속에서 볍씨가 지키려고 하는 뜻을 이어나가면서도 사람들을 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에 대한 답을 찾느라고 애를 많이 쓰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때에도 볍씨는 계속 꿈을 꿀 터입니다. ‘생명이 소중한 세상, 생명이 자유로운 세상’이 바로 지금 여기에 꽃피우기를, 우리들 한 명 한 명이 만남 속에서 자기를 깨치며 배움을 즐기고 제 소리 제 몸짓을 내는 사람, 배움과 삶의 일치점을 찾고 더불어 서로 살리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