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세 이후 세기적인 변화를 가져온 데는 ‘변증법적인 사유방식’이 그 중심에 있습니다. 변증법적인 사유방식은 ‘신의 증명’이라는 새로운 해석방식을 개척하게 됩니다. 발칙한 일이기는 했지만, 이로 인해 인간의 세계 해석 능력이 획기적으로 발전했습니다. 과학기술과 산업혁명이 가속화 되었습니다. 자본의 거대화가 이뤄졌습니다. 기술과 자본의 거대화는 필연적으로 권력의 독점을 불러들이게 됩니다. 신은 더 이상 초월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의 업적이 실질적으로 신의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사람들의 일상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순기능도 있지만, 역기능도 작지 않습니다. 내용보다는 형식이 더 중요합니다. 진실보다는 이미지가 더 중요합니다. 부도덕한 사람도 선량한 사람으로 이미지를 조작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인간의 삶에서 경외심이 사라지게 됩니다. 심하게 말하면 양심이라는 잣대가 모호하게 됩니다. 표현 방식에 따라 선이 되기도 하고 악이 되기도 합니다. 참과 거짓이라는 잣대(캐논)가 흐릿해진 것입니다.

16세기 종교개혁 당시 중요한 문서 가운데 [하이델베르그 신앙고백서]가 있습니다. 장로교의 신앙고백서인 [웨스트민스트 신앙고백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문서입니다. [웨스트민스트 신앙고백서]는 줄곧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중심으로 삼은 반면, [하이델베르그 신앙고백서]는 참된 위로의 문제를 중심으로 삼고 있습니다. 인간 현실의 비참함을 주목한 것이지요. 따라서 위 고백서는 ‘참된 위로는 하나님께로부터 온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위로야말로 인간의 비참한 현실 가운데서 참된 희망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전도서는 위로받지 못하는 자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돌이켜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학대를 보았도다 오호라 학대받는 자가 눈물을 흘리되 저희에게 위로자가 없도다 저희를 학대하는 자의 손에는 권세가 있으나 저희에게는 위로자가 없도다.”(전4:1) 잠언은 이런 세태의 정곡을 찌르고 있습니다. “불량하고 악한 자는 그 행동에 궤휼한 입을 벌리며 눈짓을 하며 발로 뜻을 보이며 손가락질로 알게 하며…”(잠 6:12-14). 사람 사이의 의사소통을 눈짓, 발짓, 손짓으로 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저들의 세계에서 조작과 음모와 궤사가 성행한다는 것입니다.

요즘 여기저기서 탄식과 분노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학대하는 자들의 지혜가 눈짓, 발짓, 손짓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욕망은 진실도 대체시킬 수 있음만큼 강력합니다. 개미들이 집단지능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듯이, 인간의 욕망도 놀라운 집단지능을 지니고 있습니다. 국가, 민족, 군대, 기업, 대학, 협회, 단체, 심지어 교회까지도 욕망이 발호합니다. 집단으로 작동하는 욕망은 자기보다 약한 사람들의 희생을 담보로 이익을 극대화시킵니다. 산업화, 조국 근대화, 수출입국, 국가 안보, 국가경쟁력, 선진국, 미친 등록금 등 모두 사회적인 약자의 희생을 볼모로 삼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 사회는 이 희생구조에 너무 익숙합니다. 사회적인 약자를 억압하고 배제시키는 데 이골이 났습니다. 집단화된 욕망은 방치하면 악마로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나라의 산업 기반이 척박하던 시절 우리 대기업들이 국가발전의 전위대역할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대기업의 탐욕을 방치하면 국가를 농락하고, 전 국민을 노예로 삼고도 남습니다.

최근 전 국회의장 김형오 의원이 해고노동자의 현실을 겪어보고, “나한테도 이 정도니 노동자엔 오죽했겠나!” 라고 탄식한 바 있습니다. 살길이 막막해진 한진중공업 해고 근로자들이 6개월 넘게 생존투쟁을 하는 데도 회사대표는 경영상 불가피한 조치라며 대화조차 거부한 데서 나온 탄식입니다. 국회 소위원회에서 출석을 요구하는 데도 회장은 바쁘다는 핑계로 출석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홍익대학교측이 청소노동자들을 상대로 명예 훼손과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 정부 들어서 약자를 찍어 누르는 방법이 고약합니다. 강자가 약자를 겁박하기 위해 법을 무기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학대하는 자에게는 돈과 권력과 법이 있음에도 학대받는 자에게는 위로하는 자가 없다는 말씀 그대로입니다. 재벌 총수가 국가 권력을 우습게 여길 정도로 막강한 권력이 된 현실. 그래도 우리는 작지만 의미 있는 가능성을 보고 있습니다. 바로 [희망버스]입니다. 김진숙 씨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