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66주년에 즈음하여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 소돔과 고모라를 위하여 기도한 아브라함의 심정으로 이 글을 씁니다. 어떻게 아브라함의 심정이 되어 기도할 수 있을까 싶기는 하지만, 감히 아브라함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영성을 떠올려 봅니다. 다름아닌 초연함의 영성, 끝없는 엑소더스의 영성, 비집착의 영성을 말합니다. 지금 현실에 안주하며 현상유지에 집착하고 있는 우리에게 새로운 엑소더스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라면 누구라도 아브라함의 영성을 품을 생각을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관성의 법칙과 타성이 강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끝없는 탈출을 시도하지 않으면, 고인 물이 썩듯이 그렇게 썩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연임이 결정된 자리에서 ‘교실도 없이 땅바닥에서 공부해 오늘날 여기까지 왔다’고 말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당시처럼 어려운 상황에서 탈출하여 오늘에 이른 것은, 실로 자랑스럽고 스스로 대견스러우며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느새 어렵던 시절을 망각한 채 살만한 처지가 되었다고 안주하면서 타성에 젖어 들고 있습니다. 아니 단순히 타성에 젖어 들기만 한 것이 아니라 황금송아지에 절하는 배금주의 문화 속에서 황금만능이라는 사회병까지 만연한 가운데서 살고 있습니다.

문민정부가 한때 이 고질적인 ‘한국병’이라고 일컫는 ‘사회병’을 고치겠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당시에 비하여 여러 모로 발전한 것은 사실이고, 또한 그만큼 비례하여 사회병 역시 더욱 만연한 것 같습니다. 요즘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부정부패와 국정의 난맥상이 극심한 것을 개탄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국민들조차 국민 소득 이만 불 시대를 연 지가 언젠데 이렇게 마냥 관성과 타성에 젖어들어 있다가 도루 주저앉지는 않을까 염려하고 있습니다.

국민 소득 이만 불이 되기까지 모두가 얼마나 노력하였습니까? 그런데 지금 그것이 마치 ‘유리 천정’이나 되는 듯이 갇혀서 그것을 뚫고 올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비단 경제 발전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여기서 탈출해야 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동반 상승하며 더욱 발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사회 전반에 걸쳐 만연한 ‘사회병’ ills of Society이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지금 이 병을 고치지 못한다면 좌초의 위기에 빠질 것은 뻔한 일입니다. 탈출이란 다름아닌 이런 병을 고치는 데서 시작됩니다. 사회적 책임을 느끼는 지성인들과 사회적 관심을 갖는 종교인들이 뜻을 합하여 위기의 속에서 희망을 말하고 드러내야 합니다. 지도력의 위기도 정치권의 무기력도 관료들의 부패와 복지부동도 그 뿌리는 모두 같습니다.

부도덕한 사회의 구조와 제도를 혁파하는 일은 전문가들이 앞장서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소임을 다하게 되려면 국민이 힘을 보태야 합니다. 부정부패도 국정의 난맥상도 따지고 보면, 사리사욕이 공동선과 공동체 이익에 우선하기 때문입니다. 이기주의, 물신주의와 무한경쟁에 익숙해진 나머지 타성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탈출은 국민이 앞서 시도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사회병에 대하여 깊은 연구를 한 칠레의 정신의학자 클라우디오 나란호 Claudio Naranjo는 말합니다. “사회병은 건강한 관계들을 유지하지 못하는 결과이다” 그러면서 그는 “건강한 개인들이 기초가 되지 않고는 건강한 사회가 존재하기 어렵다”고 덧붙입니다. 개개인의 변화가 기존 제도에 의하여 촉진되기 어려울지라도 이런 변화에 대한 정치적 가치를 인식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길입니다.

새로운 엑소더스의 실마리를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회 제도와 구조 개혁은 능력 있는 전문가에게 맡기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건강한 인성과 품격으로 변화되도록 책임과 관심을 기울일 모든 개인과 기관이 힘을 모아야 할 때가 바로 지금입니다.

‘교육이라 일컫는 것이 교육과 상관없는’ 시대를 살면서, 진정으로 국민의 인성교육에 뜻을 둔 모두의 힘이 모아져 정신 건강과 정서 건강을 도모하는 노력을 한 데 모아야 할 것입니다. 새로운 탈출은 개인의 비집착과 공동선을 우선하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