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니어그램 영성수련을 통하여 자기발견의 여로를 함께 하기시작한지 우리 공동체는 10여년이 되었다. 수련 공동체로서 서로를 이해하며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과 최선을 다하는 노력이 필요하였다.

수련 초기에는 자기발견의 기쁨으로 습관적이고 기계적인 삶에서 벗어나 참된 나를 깨우는 기대감이 우리를 수련할 수 있게 해주었다. 마치 금방이라도 자유를 얻어 각자 온전한 모습으로 이상적인 공동체를 이루며 살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내면의 영성이 깊어진 만큼 관계도 체제도 이루어지기 때문에 공동체 안에서 자기수련이라는 큰 몫이 우리에게 무겁게 주어졌다. 각자 노력하는 만큼 자유로워지는 것이기에 모두에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 시기에 우리들은 자신의 단점보다 타인의 단점이 더 많이 보이게 되었다. 각자의 격정이 작용하여 서로를 이해하거나 신뢰하거나 사랑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지게 되었다. 우리들은 자기 수련으로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수련 전의 기계적인 패턴은 아니지만 무언가 뒤엉킨 새로운 패턴으로 인한 아픔과 괴로움으로 에니어그램 수련에 대한 회의마저 들게 되었다.

에니어그램의 지혜로 자아라는 감옥에서 나와 우리 주변의 모든 문제를 쉽게 열수는 있었지만 각 유형의 주관대로 문제를 풀게 되어 다시 자기 주관에 빠지는 함정을 경험하게 되었다. 공동체 안에서 각자의 유형과 상태에 따라 격정과 강박충동이 작용하게 되어 격정도 조절할 능력이 안 되는 우리들은 비슷한 실수와 비슷한 사고의 반복으로 모두 지치게 되었다. 그러한 반복은 순수한 공동체임에도 불구하고 각 사람의 숨은 동기가 먼저 보이게 되어 서로의 이기심과 경쟁심에 과도하게 반응하였다. 인간관계에서 나와 너 그 누구도 변하지 않는다고까지 단언하는 수련자도 있었다. 그러나 인생에서 변하지 않는 유일한 법칙이 있다면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라는 진실을 믿고 싶었다. 수련자인 우리들은 본성을 회복하여 통합과 성숙을 향하는 변화된 ‘나’ 와 ‘우리’가 되는 희망을 버릴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이 폭풍처럼 지나고 나서야 우리에게 공동체적인 변화의 필요성을 깊게 인식하게 되었다. 비로소 공동체적인 의식이 ‘잠자던 상태’에서 ‘선잠 깬 상태’ 그리고 공동체적으로 ‘깨어 있는 상태’로 이르게 되었다. 아무리 개인의 노력으로 혼자 깨어있어도 공동체적인 노력이 아니고서는 온전한 자유와 해방에 이를 수 없다는 사실을 수련 공동체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동안 참고, 인내하며, 지치고, 회의에 빠진 공동의 경험이 에니어그램 수련의 목표 또한 공동의 목표를 지향하는 수련 공동체로 하나가 되게 만들었다.

모든 마음이 사람으로 향하여 있을 때 얻을 수 없었던 평화를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을 바라보니 모든 상황이 잠재워지고 평화로워졌다. 격정으로 인하여 퇴행과 퇴화 불건강한 상태를 수없이 거듭하면서 ‘자기관찰’과 ‘자기기억’속에 깊이 각인되어, 벗어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절박감을 느끼게 되고서야 눈물의 회개가 이루어졌다. 더 이상 사람을 바라보면 미쳐 버릴 것 같아 그리스도의 품안이 절실해져 하나님만 바라보게 되었고, 진정한 회심으로 대속의 은총을 경험하게 되었다.

초심으로 돌아가 ‘나는 누구인가?’ 다시 자문해 본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나를 발견한다. 주관적인 관점 안에서 타인의 모든 것을 추측하니 동기 자체가 다른 타인을 안다는 것은 착각이었다. 한숨이 나온다. 아직도 내가 옳다고 확신하며 타인을 비난하고 정죄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만 모르는 나의 모습으로 타인을 비판하며 공동체를 깨고 있지는 않은가? 다시 자문한다. 주관적인 관점 안에서의 깨달음은 모두 어리석음이다. 수련자로서의 책임을 다하여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기다려주고 여유를 갖는다. 성령을 따르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