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역사인식과 관련한 시민운동에 뛰어든 지 꼭 15년째이다. 그 시작은 1997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지원하는 일이었다. 그후 2002년 일본의 우익교과서가 일본 교과서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 기술을 삭제하자 한국의 시민단체들과 함께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응하는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이하 아시아역사연대)를 만들어 지금까지 활동해오고 있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 힘들고 어렵지만 보람 있는 일도 많았다. 그야말로 역사인식이 척박한 시대에서 피해자 문제를 다루는 일은 벌거벗은 이 시대의 자화상을 보는 것과 같다. 아울러 시민운동을 지속하게 하는 에너지는 돈도, 명예도 아니다. 공공성에 대한 확신과 지속적인 활동이 사회를 조금씩 변화시켜 나간다는 자부심이 운동을 계속하게 하는 에너지다.

올해 한일관계를 또다시 얼어붙게 만든 일본 교과서문제는 지난 10년간의 우리 시대의 문제인식이 농축되어 있다. 일본의 중학교 교과서 검정제도는 4년마다 있기 때문에 2001년, 2005년, 그리고 2009년(교육기본법과 학습지도요령 개정으로 인한 과도기), 올해 2011년으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가 일본 중학교 교과서에 주목하는 이유는 전후 일본의 역사인식인 자학사관으로 일본의 자긍심을 강조하면서, 일제가 저지른 침략전쟁은 어쩔 수 없는 전쟁이었고 해방전쟁이라는 역사왜곡을 주도하는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약칭 새역모)이 교과서를 주요 타켓으로 삼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일본 우익집단인 그들은 교육에 확실히 투자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자신들의 왜곡된 역사인식을 담은 교과서를 선보였다. 30년 후를 내다본다는 이들의 말이 섬뜩하기까지 한 이유는 중학교 교과서를 선점하는 일이야말로 일본의 새로운 미래세대에 대한 중요한 투자라는 그들의 전략적 판단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번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에서도 보았듯이 일본국민의 배려와 질서의식 등 자기공동체 안에서는 높은 규범을 보이면서도 바깥공동체인 세계를 향하여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외면하고 무시하는 그들의 문제가 역사와 현실에서 나타나고 있다.

새역모는 지난 10년간 교과서 채택률을 증가시켜 왔다. 교과서 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최소 5% 이상의 채택률이 있어야 한다. 2001년 0.039%, 2005년 0.39%라는 부진한 채택률로 인한 책임을 둘러싼 공방으로 교육재생기구와 내부분열 했지만, 여전히 그들은 올해 쌍둥이판 교과서를 만들어 교과서시장에 진입하고 있다. 또한 새역모 교과서는 일본군 ‘위안부’문제를 아예 삭제하더니, 이제는 다른 교과서들까지 일본의 아시아 침략피해 사실들이 축소되거나 누락되고 있다. 일본 교과서의 내용은 전반적으로 개악되고 있는 형편이다.

특히 올해 일본 중학교 교과서는 영토교육을 강화하라는 일본 문부성의 지침에 따라 사회과, 즉 역사와 공민, 지리교과서에 독도가 일본 영토라고 기술되었다. 물론 독도가 일본영토라는 기술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일본문부성이 개정한 학습지도요령에 의해 서술된 첫 교과서라는 점에서 일본정부의 견해를 일방적으로 기술하도록 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은 3.11 동북부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인해 일본의 시민운동이 위축된 반면, “일본 힘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민족주의를 자극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우익교과서 채택을 유리하게 하고 있다.

문제는 한국사회에도 있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온 나라가 들끓더니 10년간의 학습효과로 인해 웬만해서는 끔쩍하지 않는다. 2001년에는 지방자치단체들이 자발적으로 자매결연도시에 역사왜곡 교과서를 채택하지 말아달라는 요청서를 앞다투어 보내더니, 올해는 한일 시민단체들이 간곡히 요청해도 지자체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들이 내세우는 논리는 한일교류가 활성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교과서문제로 물 흐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 정도라면 우리 사회의 역사인식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다. 역사인식보다는 경제와 외교논리가 우선한다.

8월 말이 되면 각 지역별로 채택하는 일본 중학교 교과서의 채택 윤곽이 드러난다. 일본의 각 지역별로 일본의 우익들과 양심세력들 간의 소리 없는 전쟁이 진행되고 있다. 그야말로 역사의 기억을 둘러싼 교과서전쟁이다. 한국과 일본의 시민단체들은 일본의 역사왜곡을 막겠다는 신념으로 2011년 한해를 몽땅 바치고 있다. 한국과 일본에서 결코 쉽지 않은 싸움을 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멈출 수 없다. 왜냐하면 역사는 이 시대를 보는 거울이기에 시커멓고 먼지낀 거울을 언제까지나 바라보고 있을 수 없다. 또 교과서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달려 있기에 잘못된 역사를 그대로 두고 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기에 한일 시민단체들은 국가주의를 넘어 역사인식을 공유할 수 있는 그날을 위해 오늘도 함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