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몸에는 서로가 연결되는 통로가 있음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마음에 기쁨이 있을 때에는 몸도 튼튼해지고 활력이 있지만 마음에 병이 들면 몸도 함께 병이 나기 마련이다. 몸이 약해져도 마음에 시름시름 병이 찾아오며 모든 것이 귀찮아지고 게으르게 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몸에 병이 났을 때는 몸에 대한 치료도 해야 되지만 마음을 다스리는 작업도 함께 해야 한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병치레를 많이 하였다. 세살 때에 이미 죽을 고비를 한번 넘겼다. 이질, 백일해, 폐렴을 한꺼번에 앓은 것이다. 거의 죽어서 하얀 보자기를 덮었는데 마지막 남은 주사약을 놓아보자고 하여 그 주사를 맞고는 꼬무락꼬무락 다시 살아났다고 한다. 그래서 내 이름이 본래 홍자였는데 유치원에 들어 갈 때에 명선으로 고쳤다. 목숨 명, 착할 선으로. 명이 길고 착하게 살라는 뜻이다.

중학교에 들어 갈 때도 신체검사에서 떨어졌다. 성적은 합격이므로 1년 쉬고 학교에 오라고 해서 나는 교장실에서 하루 종일 울었다. 죽더라도 학교에 다니고 싶다고 하면서... 체육시간, 조회시간 모두 교실에 남아 있기로 하고 합격시켜 주었다. 매일 매일 주사를 맞으며 치료를 하였다. 고등학교 때부터는 그럭저럭 튼튼하게 지낸 것 같다.

30대가 되어 그동안 몸 약한 핑계로 너무나 보호만 받고 살아 온 것 같아, 내가 하나님께 해 드릴 것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나의 정체성을 찾게 되었다.

스파이! 그래 나는 하나님 나라 스파이다! 머슴형의 스파이다!

하나님이 그토록 원하시는 이 땅위의 정의와 평화가 넘쳐나는 하나님나라 확장을 위하여 보냄을 받은 스파이. 스파이는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 없다. 그리고 무엇이든지 하라고 하면 해야 된다. 이쪽으로 가라 하거나, 저쪽으로 가라고 하거나, 이 직업을 가지라 하거나, 저 직업을 가지라 하거나, 명령 받은 대로 해야 된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의 생각을 공유하게 되었다. ‘부 한 데도 처할 줄 알고, 빈 한데도 처할 줄 아는...’ 그 동안에 중요하게 여겼던 명예도 돈도 똥으로 여기며 가치없게 여긴다는 그 생각을 내 것으로 가지고 싶었다. 그리고 열심히 뛰었다. 30여년을 치열하게 살아 왔다. 물론 나의 행동은 모자람이 많았지만 나의 생각은 오직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을 하는 스파이로 살아왔다. 교회에서, 사회에서 여러가지 일을 한다고 사람들은 나에게 “도대체 당신의 직업은 무엇이오?” 하고 묻지만 나는 속으로 “스파이, 하나님나라 스파이!”하고 말해왔다. 물론 그 일이 쉽지 않았다. 참아야 하고, 견디어야 하고, 해 내야 하고, 끌어야 하고, 당겨야 하고, 빼내야 하고... 그러는 동안 나는 또 여러 번 수술을 받았다. 물론 일을 하면서 몸도 마음도 무리를 한 것이었지만, 너무나 힘이 들어서 도중에 이 일을 하지 않겠다고 반항을 하게 되면 나는 꼭 병이 들곤 하였다. 기도를 하면서 “나는 하나님께 의리를 지키기 위해 이렇게 열심히 일을 하는데, 왜 당신은 의리를 지키지 않습니까? 일을 시켰으면 그 일이 진행되어야지 왜 사방으로 꼭 꼭 닫아놓고 이러십니까?” 라고 항의도 했다.

물론 그 후론 내가 찾아 가야 할 길이 있음을 깨닫기도 하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지 못하는 데에 대한 회개를 하기도 하였다. 나를 돌아본다. 스파이로서 일을 하는 데에는 내 마음대로 하지 않는다는 자세로 하였지만 내 마음대로 한 것이 딱 한 가지 있다. ‘미워하는 일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닐지라도 공동체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시키신다고 생각되는 일은 순종하였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도, 사랑하라고 명령하실 때, 사랑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결국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아! 하나님 나라 공동체가 이런 것이겠구나 싶을 정도로... 그러나 미워하는 일은 어쩌면 그렇게 노력없이도 잘 되는지 모르겠다. 열심히 일은 하였지만 내 마음을 위한 공부는 등한히 한 것 같다.

이번에도 나는 병이 들었다. 뇌의 혈관이 좁아지고 동맥에 경화가 왔다고 한다. 참고 살았다고? 겉으로는 참고 살아온 것 같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서 확 풀어 버리는 작업은 하지 않은 것 같다. 아름답고 이쁘게 늙어가고 싶었는데... 추하게 늙는 것이 제일 싫었는데... 스파이를 파견한 하나님이 내 속을 보시고 나를 뭐라고 하실까? 공동체 만들기를 해온 내가 너그러운 마음도 없고, 모든 이를 다 이해하는 마음도 없다면, 결국 내 마음이 다치게 되고 남에게도 상처를 주는 사람이 되는데이를 어찌할까? 몸에 병이 났으니 이제부터 마음공부를 다시 시작해야겠다.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시여! 죄인인 나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