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을 바라보며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조용히 앉아서 명상합니다. ‘무소식이 희소식’ 이라는 말이 있듯이, 헌법재판소가 한가하면, 나라가 편한 법일 터인데, 금년에는 그 어느 때보다 더 헌법재판소가 일도 많고 고민도 많았던 한 해였습니다. 헌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재판이 있었고, 불과 반년 만에 수도이전과 관련하여 어려운 재판을 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관습헌법’과 ‘경국대전’에 대한 비판, 회의, 불복 등 후유증과 혼란은 여전히 국가보안법 폐지 여부를 놓고 빚어진 갈등과 여론 분열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게다가 수도이전 문제를 둘러싼 갈등과 국회의 이른바 ‘4대법안’ 통과를 둘러싼 공방과 긴장은 국민 모두를 피곤하게 하는 일들의 연속일 따름입니다.

이런 위기적 상황 속에서 요청되는 분별지를 떠올립니다. 우리 자신을 냉철하게 성찰하며, 우리의 문제를 보다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분석해야 합니다. 우리는 왜 이런 상황을 되풀이하고 있는지, 우리에게 가장 큰 걸림돌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열린 마음과 깨어있는 의식으로 찾아야 합니다.

우리 국민은 몇 가지로 특징을 드러냅니다. 첫째, 갈등을 몹시 싫어합니다. 기피하고 두려워하기까지 합니다. 둘째, 어려움에 빠지면 눈을 감아버리고, 미루고 나태해집니다. 셋째, 갈등을 피하는 방식으로 자기비하에 빠집니다. 지난 세월 동안 우리는 ‘엽전 근성’을 탓하는 일이 너무 많았고, 한 때는 시간 안 지키기로 악명이 높아 이른바 ‘코리안 타임’이란 말까지 듣기도 하였습니다. 게다가 관성의 힘이 강하여, 좋은 일을 지속적으로 하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없으나, 안 좋은 일도 한번 시작하면 막무가내로 계속하는 타성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단점을 뒤집어 놓으면, 장점이 됩니다. 첫째, 평화를 사랑하고 조화를 이루며 화목하는 것을 중히 여깁니다. 둘째, 마음먹고 나서면 누구 못지않게 부지런합니다. 지금 동남아 일대에서는 ‘한국인’의 대명사로 ‘빨리 빨리’가 통할 정도입니다. 셋째, 은근과 끈기를 자랑합니다. 지속성의 대표라 할 만 합니다. 한번 대세가 결정 나면, 너도 나도 나서서 미루던 일은 간데 없고, 모두 하나처럼 힘차게 달려갑니다. 우리의 ‘저력’이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나태에서 근면으로 왔다 갔다 주기적으로 반복하면서 격정에 사로잡히기를 반복하니까, 간단하게 말해서 국민 소득 1만불의 턱을 넘지 못하는 것입니다. 물론 경제발전이 전부는 아니라 하겠으나, 문제는 우리가 그 좋은 ‘국민의 저력’을 올바로 사용하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이제는 더 늦기 전에 이 고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선순환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더욱이 고난 속에서도 희망을 찾는 성탄절을 맞이하며, 우리는 무엇보다도 서로에게 마음을 돌이키는 것입니다. 대립과 대결로 치닫던 생각과 마음을 서로의 입장에 서서 가다듬으며,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바탕에서 공감대를 형성하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크게 잘못될 수 있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말입니다.

여기에 긴요한 지혜가 있습니다. 자기 관찰과 자기 기억에 다름 아닙니다. 아홉가지 지혜의 체계를 따라 살핍니다.

1. 우리는 지금 많은 문제를 안고 있으며, 국민 대다수가 불안과 불행을 느끼고 있습니다. 2. 우리에게 반복되는 문제와 조건들을 의식합니다. 3. 우리에게 새로운 일/사건이 들어옵니다. 한 해에 두 번 겪는 헌법재판소의 판결 같은 큰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4. 우리의 방어기제를 직면합니다. 5. 우리의 갈등 속에 있는 에너지를 이용하는 지혜를 살립니다. 6. 깨달음이 생기고 눈이 새롭게 열립니다. 7. 우리에게 주어진 목표를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복무합니다. 8. 마침내 목표를 달성합니다. 9. 고등 의식을 갖추게 되며 큰 사랑을 터득합니다. 이와 같은 선순환의 지혜를 살려야 합니다.

이쯤 되면 첫째, 자기 자신을 압니다. 둘째, 아무 것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셋째, 매사를 스스로 검증합니다. 그래서 객관적 의식과 정신을 가지고, 서로를 뜨거운 동정심으로 보듬어 주며,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부지런히 모두가 일하게 될 때 ‘국민의 저력’은 하늘로 치솟게 될 것입니다.
성탄절에 가슴 깊이 품는 희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