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응?”
“애가요…….”
“애가 왜?”
“……애가, 발가락 손가락까지 무좀이 생기고, 밤이면 끙끙 앓는 소릴 한다구요. 이젠 좀 놓아줍시다.”
어느 날 밤, 엄마가 아빠에게 말했어요.
“그런 일을 시킬 줄은 몰랐지. 캡 쓰고, 빵이나 꺼내주는 줄 알았다구. 그나저나 약속한 기간은 채워야 할 걸? 내가 붙잡고 있는 게 아니구.”
“기간은 무슨 기간? 그냥 나오면 되죠, 뭐. 품값 포기하구…….”
“아니지, 아니구말구. 그게 얼마나 귀한 일인데, 그냥 나와? 안되지, 안되구말구. 애가 우선 포길 않을 거요. 걔가 누군데…….”
“그럼요, 그렇구말구요. 부전자전(父傳子傳)인걸요.”

그랬어요. 아들은 무좀 치료를 받아가며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닭다리를 자르고 설거지만 하다가 어느 날 드디어 ‘캡’까지 쓰고 매장으로 나왔지요. 품값도 제대로 계산해 받고, 당초의 약속기간도 지켰어요. 그리고 과외생을 모집했어요. 가족회의에서 과외비도 반을 접어 받기로 결정했고요. 줄을 서던 여러 명이 아쉬워하며 돌아갔지요.
그런데, 그게 옛날 얘기가 됐어요. 아빠는 직장을 잃었고, 차고 넘치던 아들의 과외자리는 하나 둘 떨어져 나갔어요.
아들은 다시 광고를 만들었어요. 요모조모로 문장도 다듬고, 전과 달리 문어발도 정성껏 오렸어요. 여러 장을 복사하여 관리실에서 검인까지 받았어요. 그래서 여기저기 붙였어요. 그런데 전화 한 통 오질 않아요.
그럴 수밖에, 문어발이 열 개씩 그냥 붙어있는 걸요. 바람에 나부낄뿐인걸요.
아빠는 뒤늦게 ‘보따리 장수’가 되었어요. 이 대학에서 저 백화점으로, 저 백화점에서 또 다른 문화센터로 강의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요.
교원 연수에도 가요.
주부교실에도 가요.
화장품 외판원 연수와 어린이 논술 특강까지 달려가요.
오대불문이라나요. 다섯 가지 ‘묻지마’가 있대요.
첫째, 시간불문, 강의 시간이 많거나 적거나, 하루 두 시간인데 첫째 시간과 둘째 시간 사이가 다섯 시간이나 벌어져 있어도 그것을 따지지 않기.
둘째, 주야불문, 강의가 밤에 있건 낮에 있건 묻지 않기.
셋째, 남녀불문, 수강생이 남자건 여자건, 아이건 노인이건 가리지 않기.
넷째, 원근불문, 강의장소가 멀건 가깝건, 교통이 편리하건 불편하건 따지지 않기.
다섯째, 다소불문, 강의료가 많거나 적거나 상관치 않고 무조건 고맙게 생각할 것.
그러다 보니 아빠는 매일 파김치가 되어 돌아오고, 파김치인 채로 매일 아침 집을 나섰어요. 왜냐하면, 밤에도 쉴 수가 없거든요. 자료도 찾고 책도 읽어야 하니까요. 준비 없이 어떻게 강의를 해요? 듣는 사람이 매일, 곳곳마다 바뀌는 걸요.
“당신 이러다 병나겠우. 아니, 죽겠우.”
엄마가 아빠 이마에 흐르는 진땀을 찍어내며 말했어요.
“오늘도 전화 없었지?”
아빠는 딴 얘길 해요.
사실 딴 얘기가 아니지요. 식구 모두가 기다리는 게 전화인 걸요.
“애가 무척 기다리는 눈치지?”
아빠가 다시 전화얘길 꺼냈어요.
“…….”
그렇지만 엄만 대꾸가 없어요. 개량한복집에서 맡아온 단추를 매듭짓다가 흑, 하고 숨을 들이쉬는가 싶더니 화장실에 달려가요.
아빠는 여전히 돋보기를 쓴 채 사전을 뒤적이고요.

그날도 아빠는 어김없이 파김치가 됐지요. 소주까지 한 잔 마친 터라 다리까지 휘청거렸어요. M 백화점 문화쎈터에서 강의료를 받았거든요.
버스에서 내렸을 때, 아빠의 눈길은 정류장 옆의 전봇대로 갔어요. 여전히 광고 쪽지는 바람에 나부끼고 있어요.
하나, 둘, 셋……일곱, 여덟, 아홉……
아빠는 눈을 부릅뜨고 열 개의 문어발을 노려보다가, 얼른 그 중 두 개를 뜯어내 입에 넣었어요. 그리고 꼭꼭 씹었어요. 퇘, 뱉으려는데 안경 낀 아들의 웃은 얼굴이 떠오르지 뭐예요. 아빠는 저도 모르게 싱긋 웃었어요.
아파트의 주차장을 지나던 아빠의 눈이 또 광고판에 가 멎었어요.
그런데 이게 웬일?
누가 문어발을 한 개 떼 갔네요.
아빠는 잠시 광고판 앞에 멈춰 섰어요.
문어발 위로 아들의 웃는 얼굴이 다시 떠올랐어요. 아빠는 기분이 좋았어요.
“에라, 한 장 더 떼 주지!”
아빠는 문어발을 하나 조심스레 뜯어내 씹었어요. 그리고 급히 104동 입구로 들어섰어요.
그런데 거기 한 여인이 등을 보이고 서 있어요. 지금 막 아들의 광고 쪽지를 한 장 뜯어내는 참이에요. 술이 거나했지만, 그리고 현관 불빛은 흐릿했지만, 아빠는 그 여인이 누구인지 금세 알 수 있었어요.
“당신이었군 그래, 허허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