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지구가 다 학교였으면 좋겠어!”

이제 막 초등학생이 된 태미가 이런 말을 던졌다. 모든 학생들이 이런 맘으로 학교생활을 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 역시 올해 떨리는 가슴으로 딸을 학교에 들여보낸 초보학부형이다. 취학통지서가 내 손에 쥐어졌을 때 생기던 그 이상야릇한 감정, 예비 소집일에 딸이 다닐 학교를 가면서 느꼈던 그 생소한 감정, 입학식날 ‘앞으로나란히’를 하는 딸을 쳐다보면서 가졌던 그 가슴 뭉클한 감정이 아직도 채 가시지 않은 채 학부모의 역할을 배워가고 있다.

처음엔 등하교길이 불안하기만 해서 아침 일찍 딸의 손을 잡고 교실까지 데려다주고 신주머니를 걸어놓는 것부터 자리에 앉아서 가방을 정리하는 것 까지 들여다보고 제자리에 앉아있는 딸의 모습을 보고도 집으로 돌아올 수가 없었다. 많은 엄마들이 자리를 뜨지 못하는 것을 보고 다 한마음이려니 생각을 하니 이상한 웃음까지 나왔다.

이제 한달이 지난 지금, 아침에 혼자 나서서 친구들을 만나서 재잘거리면서 학교에 가는 딸의 모습을 보면 참 대견하고 고마운 생각이 든다.

학교가 마치고 집으로 혼자 돌아오는 딸을 맞아서 둘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먹는 점심은 또 색다른 맛이다. 늘 동생에게 엄마를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태미에게 엄마와의 단둘의 식사와 휴식을 선물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점심을 어떻게 매일 챙겨주나 하는 힘든 맘이 가셔버렸다. 태미가 하교하고 2시간정도 후에야 동생 지니가 집으로 온다. 태미는 그때까지의 시간을 많이 즐기는 듯 하다. 이것 또한 태미가 초등학교를 다님으로서 누릴 수 있는 엄마와의 단촐한 공동체의 즐거움이다.

태미는 유치원을 다닐 때도 참 착한 학생이었다. 엄마 말보다 선생님 말을 더 잘 듣고, 선생님이 하라면 하고, 하지 말라면 절대로 안하는, 선생님들이 예뻐하실 수밖에 없는 어린이였다. 유치원이 바뀔 때마다 엄마 아빠가 놀랄 정도로 적응을 잘 해서 너무 고마웠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맘 넓게 행동하여서 갈등을 일으키는 일 없이 잘 지내주었다.

초등학생이 된 태미는 선생님께서 말씀하는 대로 잘 따라 해서 벌써 스티커를 5개나 받았다고 했다. (아직 한 개도 못 받은 친구도 많고, 두세 개 받은 친구들은 여럿이 있다.) 늘 자기 조가 다른 애들이 장난을 많이 쳐서 칭찬을 못 받는 게 스트레스로 다가오지만, 혼자 늘 열심히 하는 태미의 모습을 선생님께서 보아주셨나보다.

학교생활을 재미있어 하지만 태미는 가끔씩 남자애들이 자기반에 없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곤 한다. 늘 장난치는 아이들이 주로 남자애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태미에게 나는 장난치는 애들이 있으면, 또 점잖은 애들도 있고, 선생님께 혼나는 애들이 있으면, 또 선생님의 말을 잘 따라하는 애들이 있다는 것을 늘 이야기해준다. 다 함께 생활하는 공동체에서는 모든 것이 다 맘에 들 수 있게 되기는 힘들다고, 그 가운데에서 자기가 잘 해가면 다른 친구들이 잘하는 모습을 따라하게 될 거라고, 선생님의 말씀을 안 듣는 친구들이 이해가 안 된다고 말하는 딸을 달래준다. 내가 먼저 양보를 해주고, 친구들에게 친절하게 행동하면 모든 친구들이 다 나를 따라하면서 좋아할 수밖에 없게 된다고 거듭 강조해 말하곤 한다.

요즘 태미는 자기 공동체의 다양성은 인정을 하는 듯 하다. 짧은 시간 내에 큰 이치를 터득한 것 같은 딸에게 감사하면서, 이제는 태미가 여러 친구들이 함께 생활하는 교실 내에서 이 친구는 늘 이렇다, 저 친구는 늘 저렇다고 틀에 박힌 생각과 고정관념은 키워가지 않기를 바란다. 작은 사회 1학년 5반에서 생활해가면서 나의 딸은, 사람은 생긴 것이 다 다르듯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도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는 공동체생활의 복잡 미묘한 맛을 차츰차츰 알아갈 것이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를 때부터 들어왔던 나는 육아에 있어서도 자신의 상황을 감사하게 생각할 줄 아는 데에 중점을 둔다. 태미에게도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어차피 해야 할 일, 어차피 가야할 길이라면 기분 좋게 감사하면서 하자고 달랜다.

더 높은 것을 추구하고 더 나은 것을 바라며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의 나를 감사하고, 현재의 상태에 고마움을 느끼고 산다면 더욱 행복해 질 수 있다고 늘 말하곤 한다. 고맙게도 태미는 그렇게 말하는 엄마의 뜻을 잘 받아들여준다. 그런 삶의 지혜로운 생각은 물론 우리엄마에게 받은 가르침이지만, 내가 나의 엄마에게 그런 말을 들었을 때 나의 반응은 태미의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형편없었다. 난 늘 엄마에게 투덜거리면서 감사하지 못했었는데, 그럴 때마다 엄마는 속상해하시면서 딱 너 같은 딸 낳아서 한번 키워보라고 하셨다. 지금 나도 우리엄마처럼 딸을 키우고 있지만, 나 같은 딸은 아니라서 참 감사하고 있다.

“유치원보다 학교가 백배 천배 더 재미있어~!” “엄마, 오늘도 선생님 심부름했어~!”

학교를 다니는 것이 즐거움으로 느껴지는 태미에게 참으로 고맙다. 일요일에도 학교에 갔으면 좋겠다니, 정말 즐겁긴 한가보다. 학교에서 있었던 많은 일을 이모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수다를 떨고, 그 곁에서 엄마도 더불어 학교이야기를 많이 알게 된다.

지금의 그 마음이 늘 지속될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처음처럼 늘 긴장하고 팽팽한 맘을 가지고 산다면, 싫증내거나 지루해지는 일은 덜 하리라. 감사하면서 기도하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살아간다면 그 누가 행복하지 않겠는가.

1학년 5반이라는 새로운 공동체 속에서의 큰 딸래미를 보면서 내 자신도 많은 감사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늘 처음처럼 초심을 잃지 않으면서 학교생활을 즐겁게 하기를, 또 태미를 도와주는 엄마의 입장에서 나도 그렇게 되기를, 나아가서 내가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을 때 우리엄마의 초심을 읽으며 생활할 수 있게 되기를 늘 기도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