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그러운 신록의 계절, 오월에 어린이날이 들어 있는 것은 생각만 해도 좋습니다. 소파 방정환이 중심이 되어 1923년에 ‘어린이’잡지가 발간된 것도, 그에 앞서 1922년에 어린이날이 만들어진 것도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어른 중심의 문화 속에서 피어난 꽃이었습니다. ‘어린이’란 말을 처음 만든 것도 어린이를 인격적으로 대하기 시작한 첫걸음에 다름 아니었으니까요.

기실 따지고 보면, 세상 누구나 어린이를 사랑하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실제로 어린이를 사랑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듯 싶습니다.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으로는 모자랍니다. 지금으로부터 30여년 전, 어린이날 제정 쉰 돌을 기념하여, ‘어린이를 위한 어른의 다짐’이란 선언문이 나온 배경에도 그런 뜻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 당시에도 그랬고, 소파 방정환의 시대에도 그러했듯이, 오늘 우리의 시대에도 어린이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대한 일인가를 다시 생각합니다.

참된 사랑이 감상주의도 아니고 로맨티시즘이 아닌 것처럼, 진정으로 어린이를 사랑하는 것은 예수께서 마태복음 18장 14절에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될 만큼 큰 뜻이 있습니다. “어린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허락하고, 막지 말아라. 하늘나라는 이런 사람들의 것이다.” 가히 혁명적 선언입니다. 이 세상에서도 중심에 놓이지 않고, 변두리에 밀려나 있던가, 어른들 가까이 있어봐야 악세사리 취급받는 어린이가 ‘하늘나라’의 주인공이 된다는 선포이기 때문입니다.

어른이 어린이를 인격적으로 존중하며 사랑하는 데는, 기존 사회의 가치관과 인간관이 근본개혁적으로 radically 변화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임을 우리는 여러 면에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부모들이 어린이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며 삽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말을 빌리면 이기적인 자세를 고수하면서 사랑한다는 것은 착각일 수는 있어도 진정한 사랑은 되기가 어렵습니다.

부모들이 어린자녀, 곧 어린이를 사랑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에 경종을 울리며 다시 생각하도록 말하는 또 다른 사람이 있습니다. 원형심리학자 제임스 힐먼 James Hillman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행복한 어린이’가 한번도, 그 어디서도 부모노릇 parenting의 목표가 되어본 일이 없습니다.” 그는 ‘영혼의 코드-성격과 소명을 찾아서-라는 책에서 부모의 환상 parental fantasy과 오류 error에 대하여 말합니다. 깊이 공감하며 동의합니다.

부모들은 대개 사랑을 전제로 하는 것 같지만, 그것은 막연하고, 어린이가 공부 잘 하고, 좋은 학교에 가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성공하는 사람으로 커가는 것에 대하여 환상을 갖습니다. ‘공부해라’, ‘일등해라’, ‘남보다 앞서 나가라’, ‘친구를 사귀어도 공부 잘하는 아이하고 놀아라.’ 등등,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하듯이 합니다. 잘 가면, 이렇게 해서 이른바 성공하는 사람이 됩니다. 부모노릇을 열심히 한 덕분입니다. 그러나 잘못되면, 부모노릇의 은공에도, 자녀들은 성취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결국 성패에 상관없이 어린이가 어린시절에 누려야 할 행복은 빼앗기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부모의 환상 때문에 치르는 값입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많이 배우고, 똑똑한 부모일수록 범하는 오류가 있습니다. 부모는 부모이지 교사가 아니고, 멘토 mentor가 아닌 것입니다. 물론 가르칠 수 있고, 지도할 수 있고, 상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는 그중 어느 역할과 기능보다도 ‘사랑으로 행복하게 해주는 일’이 본령입니다.

세상의 모든 어린이를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하여, 세상의 모든 부모들은 이런 부모의 환상과 오류에서 벗어나야 할 것입니다. 어린이가 참으로 행복하게 어린 시절을 보낸다면, 그 과정에서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일’과 ‘제일 잘 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하게 됩니다. 누구나 자기가 제일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만나면 ‘베스트’ BEST는 용솟음쳐 나옵니다. 이게 최상입니다. 이 싱그러운 오월에, 부모의 마음도, 어린이의 삶도 싱그러워지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