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1938년 12월 생, 호랑이 띠다. 충남 온양에서 태어나셔서 일제의 해방과 6.25전쟁을 겪으시며 온양여고를 졸업하셨다. 열두 남매의 맏딸로 태어나 안 해본 일 없이 일도 지독히 많이 하셨다고한다. 결혼 후에 아버지께서 제일 하고 싶은 일이 뭐냐고 물으시길래 대학교에 가고 싶다고 했더니 그게 무슨 어려운 일이냐면서 손수 원서를 가지고 오셔서 입학 허가를 받고 들뜬 마음으로 입학을 준비하다가 임신을 하는 바람에 대학입학을 포기하셨다고 한다. 내가 초등학교 때, 엄마는 벼르고 별렀던 대학에 입학하셨다. 신학교를 졸업하자 곧 보수교단의 전도사로 평생을 시무하셨다. 엄마는 예순 다섯, 정년퇴임을 하기까지 한 교회에 시무하시며 상담과 예배, 심방과 장례 외에도 교회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일일이 다 돌보셨다.

일하는 엄마를 둔 나는 유아기를 제외하고는 살뜰한 보살핌을 받지 못했다. 입학이나 졸업식, 혹은 학부형 상담이나 행사에 엄마가 오시질 않아서 속상해 하거나 혼자서 삐지곤 했다. 결혼을 해서도 마찬가지였는데 큰 아이를 낳았을 때도 혼자 미역국을 끓여먹으며 서러워했다. 나는 엄마의 교회 일에 대한 유별난 집착을 이해할 수 없었고, 엄마의 그런 극성스러움, 약간의 허영, 사소한 욕심, 항상 크고 작은 교회일로 시달리는 것이 싫어서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조용히 교회 일에 시무하시지 왜 매 번 교회 일로 교직자들과 다투고, 권사님과 티격태격하고, 매 번 교회에 시말서를 쓰고, 하소연을 하고, 가슴을 끓이는 것일까? 딸이 자식을 낳아도 거둬주지 않으면서 교인들이 아프다고, 남편이 바람을 폈다고, 아기를 못 낳는다고, 부모가 돌아가셨다고, 이혼을 한다고 하면 며칠씩이고 기도원에 가서 같이 금식 기도를 하고, 집에도 안 들어오며 장례를 치러주고, 같이 울면서 지내는 것일까?

나는 결혼 후에 아이들을 키우고 살림하다가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란 후엔 내 일을 시작했다. 엄마는 엄마대로 나는 나대로 바빠서 무늬만 모녀로 살았다. 마흔이 되어 나는 40년의 도시 생활을 접고 시골로 내려와서 식당을 시작했다. 식당영업이 시작되고 예상치 않았던 어려움이 생기자 나는 안면몰수하고 무작정 엄마한테 도와달라고 떼를 썼다. 도와달라고 부탁할 데라곤 엄마 밖에 없었다. 전화 받고 그날 밤으로 달려오신 엄마는 우리가 지금 아주 잘 하고 있다고, 훌륭하다고 용기와 칭찬을 해주시면서 손길이 닿지 않는 곳곳을 조용히 매만져 주셨다. 김치와 장을 담그시고, 장아찌를 절이고, 껍질을 벗겨, 채 썰고, 쑥, 씀바귀, 두릅 순, 머윗대를 적절한 시기에 꺾어 준비해 놓으시며, 주변의 잡초를 뽑고, 화단을 가꾸시랴, 씨앗을 심으시랴, 또 감자도 캐시고, 호박잎도 따서 밑반찬 준비를 완벽하게 하실 뿐 아니라, 새벽마다 일어나 기도하시고 나면 발래와 청소 뿐 아니라 이불 호청과 바느질, 풀 먹임, 다림질 등을 하시고, 강아지를 돌보고, 광까지도 정리하신다.

내가 요리를 잘해서 식당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가 밑 준비를 다 해주시기 때문이다. 발품을 팔아 가장 좋은 재료를 구해주신다. 엄마가 없이 어떻게 내가 식당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엄마의 바지런함에 세삼 놀란다.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이십대 청년의 기개보다 더한 열정이 있고 먼 계획이 있고 능력이 있으시다.

어느 날, 엄마는 아침 일찍 쑥을 한 광주리 따오시면서 환하게 웃으신다. “얘야, 너 때문에 내가 너무 행복하구나. 딸 덕에 이 좋은 시골서 좋은 공기 마시며 향긋한 쑥을 마음껏 캘 수 있으니 이 모두가 딸 잘 둔 덕이구나, 고맙다.” 나는 엄마의 진심의 말을 들으면서 오랜 동안 쌓아둔 마음의 벽이 한순간 와르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절 이렇게 잘 키워줘서 정말 고마워요. 앞으론 자주 찾아뵙고, 엄마 아빠 모시고 여행도 가고, 맛있는 진지도 지어드리고, 같이 목욕탕에 가서 등도 밀어드리고......”예전 같으면 쑥스러워 하지 않았을 말을 진심으로 말했다. 식당이 잘 되면 나는 정말로 엄마에게 약속한 것들을 다 해드릴 생각이다.

엄마의 허영, 욕심, 극성스러움, 애달픔은 흔한 속물근성이 아니라 엄마의 생명의 에너지, 타인에게로 향하는 자신의 애정과 연민의 엄마다운 표현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엄마가 몹시도 아름답고 싱싱하고 건강하고 멋진 여전사처럼 느껴졌다. 엄마는 요즘도 내게 종종 이런 말을 하신다. “얘야, 너는 도대체 누굴 닮아서 그리 극성스럽냐? 사부작거리면서 되게 나댄다.” 나는 속으로 막 웃는다. 그리고 나보다 한 술 더 떠서는 앞으로 10개년 계획을 늘어놓는 엄마를 향해 마음속으로 크게 외친다. 브라보, 엄마의 청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