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령체험

지만이는 ‘행동발달장애’라는 이름으로 특수학교에 다닌다. 어느 날 지만이는 모든 인형들을 플라스틱 장난감 집 속에 다 쑤셔놓고서, 남은 인형 몇 개는 집 창문에 굵은 검정 고무줄로 꽁꽁 묶어놓았다. 그 리고는 어눌한 말투로 "말을 너무 안 들어서 아저씨가 묶어버렸다"라는 말을 계속 반복했다. ‘저리도 세게 묶인 느낌 속에 사는 걸까?’ 나는 괜시리 섬짓한 느낌에 그날 지만이가 가자마자 인형들을 풀어 주었다.

그러던 지만이가 어느 날 부터인가 마치 페인트공이 된 듯 그 집을 물감으로 조용히 칠해가기 시작했다. 온 집을 다 칠하고 나면, 그 집을 통째로 화장실로 들고 들어가 다시 물로 씻어두고 다음에 와서 또 칠하고를 반복 또 반복했다. 처음 그 장면을 목격했을 때 나는 ‘세상에, 저 비싼 물감을! 저 자식이 집에서 괜히 맞겠어? 학대 괜히 받겠어?’하는 생각과 ‘아니야, 아니지 무언가 의미가 있을지 몰라’ 하는 <생각전쟁>속에서 정신을 가다듬어야했다.

그런 그의 작업 과정을 기다려본지 몇 주일이 지난 어느 날, 나는 지만이의 페인트칠 작업 과정을 사진으로 남겨 둘 생각으로 그와 조금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한 치의 오차라도 있을까봐서, 섬세하고 진중하게, 마치 긁혀버린 자신의 내면의 공간을 달래주는 듯, 마치 온 우주에 작업하는 페인트 공 자신만이 살아서 숨 쉬는 듯 고요하면서도 정밀한 그의 작업이 그렇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를 지켜보고 있던 내 두 눈엔 어느 새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어? 내 머릿속은 아무것도 없는데 눈에선 눈물이 그냥 주르륵 흐르네’ 흐르는 눈물과 함께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그와 나를 감싸는 이름 모를 황금빛 막의 기운. ‘아, 이거 ~ 성 ~ 령 ~이 라는 건가보다!’ 내 머리가 회전을 멈추는 순간, 내 힘으로 무엇을 해내려고 하는 어설픈 시도가 잠시 보류된 순간. 비로소 그때야 내 안에 품어져있던 그 존재가 내 몸을 뚫고 나오시는가보다. 그래. 이렇게 함께 치유해가자. 이렇게, 서로, 함께, 너희들이 선물이다. 그야말로 너희들이 하늘의 선물이다!! <추신 : 신기하게도 그날 이후 지만이는 그 페인트칠을 멈추었다.>

2. 하늘을 나는 간지럼

지만이는 5분에 한번씩 "신부님. 지금 몇시에요?"라는 문장을 반복했다.(지만이, 혼자 시계를 다 볼 줄 안다) "지난 6월 30일 토요일에 신부님 뭐했어요?" " 9월 10일에 하늘소리 차, 와요 안와요?" " 함유진은 어디 갔어요?" 따위의 자기가 더 잘 알고 있는 이야기를 3-4분에 한번 씩 반복하며 물어 교사들을 시험하는 지만이. 시커먼 잉크를 바닥에 그냥 쏟아 버리거나, 주일 제대 초에서 불을 종이에 옮겨 불을 내려고 한다거나, 인형의 옷과 머리카락을 다 잘라 버린다거나 하는 행위로 교사들의 반응을 줄곧 시험했다.

그런 지만이를 지켜보던 나는 어느 날 그와 마주앉았다. "너 꿈 깨라. 여기는 무슨 짓을 해도 너를 때리거나 야단칠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러니까 맞을 짓 찾을 시간에 놀잇감을 찾아라. 아무리 노력해도 넌 맞지 않는다. 학대, 그 공포 속에 살다보니 그냥 맞는 게 더 편안하니까 바보행세 해버리는 거, 그거 가슴은 아프지만 이제 그만하자. 선생님들은 다 안다. 지만아 네가 절대 바보가 아니라는 것을. 너는 너 자체로서 존귀한 존재이며 빛나는 신의 창조물이란 걸. 그러므로 이제부터 바보 행세 할 때마다 간지러움을 태우겠다!” 지만이는 멍하니 공황상태에 빠졌다. - 다 들켜버렸네. 이제 무슨 방어기제를 쓰지?- 나는 며칠을 그렇게 지만이를 간지럼 태우며 보냈다. 어떻게 하면 학대를 계속 받아볼까 하고 애써 머리 굴려 한 행위들에 대한 보상이 간지럼이라니... 간지럼을 당하며 바닥을 뒹구는 지만이 얼굴은 그야말로 하늘을 나는 얼굴, 날개를 단 얼굴이다.

그리고 다음 날,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는 지만이. "왜 또 바보행세 하고 싶어? 간지럼 당하고 싶어?” 지만이는 씩 웃으며 "신부님 근데 지금 지금 몇시에요?" 하곤 바로 도망 가버린다. 휴. 이제 됐다. 자기 방어기제에 대한 일차적 인식 완료. 이제 지만이는 말한다.
“신부님, 저 간지럼 당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