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들이 회의를 하여 자기들도 왕을 세우기로 하고, 자기들의 왕이 되어줄 나무를 찾아 길을 떠났습니다. 나무들은 올리브나무를 만나자 그에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왕이 되어 주십시오.”

그러자 올리브나무가 대답했습니다. “내가 내는 기름이 하나님과 사람들을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지 모르오? 그 일을 그만두고, 다른 나무들 위에 군림하는 일이나 하란 말이오? 난 안 되오.”

나무들은 무화과나무를 만나자 그에게 왕이 되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무화과나무가 대답했습니다. “달고 맛있는 이 무화과를 내지 말고 다른 나무들을 부리면서 날뛰라고요? 난 못하겠소.”

나무들은 포도나무를 만나자 그에게 왕이 되어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포도나무가 대답했습니다. “달콤한 포도주 내는 일을 그만두고 다른 나무들 위에 군림하라고요? 난 안 되겠소.”

그러자 나무들은 가시나무에게 가서말했습니다. “우리의 왕이 되어 주십시오.” 그러자 가시나무가 말했습니다. “그대들은 정말로 나를 왕으로 삼을 생각이오? 그렇다면 모두 나에게 와서 나의 그늘 아래로 피하도록 하시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가시덤불에서 불이 뿜어 나와서, 레바논의 백향목을 다 살라 버릴 것이오.”

사사기(9:8-15)에 실려 있는 이 우화를, 지금부터 꼭 10년 전 대선 정국이 한참 어지럽게 달아오르던 무렵에도 본란을 통해 함께 음미한 적이 있습니다. 민족의 운명이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놓인 요즈음, 또다시 요담의 우화를 들추게 됩니다.

오늘의 시각에서 다시 보면, 무엇보다도 왕이 되지 않겠다고 사양하는 나무들의 구실이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그들은 무엇보다 먼저, 각기 제 구실을 해야 한다는 것을 내세우며 자기 본분을 지키려고 합니다. 다음으로는, 어찌 ‘다른 나무들 위에서 날뛰겠느냐’고 사양합니다.

하지만 뒤집어보면, 이 두 가지 요건이야말로 오히려 왕으로 모셔 마땅한 절대절명의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제 분수를 알고, 자신이 왜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지 하늘로부터 받은 소명에 대한 인식이 분명합니다. 게다가 남들 위에서 날뛰는 짓은 정말 하고 싶지 않다고 사양합니다.

자신의 이기적 야망이 앞선 자가 높은 지위와 권력을 갖게 되면, 흔히 자신의 욕망에 함몰되어 부정부패를 저지르곤 하는 추태를 연출하게 됩니다. 다른 나무들은 본분을 지키려고 사양하는데 비해, 가시나무는 폭력성을 내비치면서 자기에게 복종할 것을 요구합니다. 말할 나위도 없이 이런 나무는 자격이 없습니다. 왕으로 모셔지기에 합당한 나무가 있다면,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다른 나무들을 행복하게 해야 한다는 평범하지만 위대한 뜻을 품고 있는 나무여야 할 것입니다. 그런 나무는 다른 나무들로부터 높임을 받아 마땅합니다.

대중의 능력이 몰라보게 향상된 오늘날에는 더욱 더 ‘군림형’ 지도자는 맞지 않는 듯합니다. 그늘진 곳을 보살피고 다독여서 하나의 비전 아래로 뭉치도록 하는 데에 주안점을 두는 지도자가 절실합니다. 위대한 남극 탐험가인 어네스트 색클턴 경은 21세기형 리더십의 전형으로 손꼽힙니다.

『색클턴의 길 Shackleton’s Way』(한국어판 『실패한 탐험가, 성공한 리더』)에 나타난 그의 눈물겨운 여정은, 한 사람의 지도자가 그를 따르는 모든 이들의 인생에 어떻게 빛이 되어줄 수 있는지를 여실하게 보여줍니다. 그가 드러낸 10가지 덕목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것은, 아무에게도 어떤 경우에도 ‘날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사람으로 존중하고, 우애와 인내로써 공동의 운명을 지킨 그야말로 삶의 전투 마당에서 진정으로 ‘승리’한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의 격정에 지배당하지 않고 어엿하고 떳떳하게 자신의 인격과 소명에 충실하여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었던 보기드문 영웅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역사적 소명 앞에서 옷깃을 여미고 다시 한 번 선택의 중차대함을 의식하며, 요담이 들려주었던 나무들의 우화를 다시 음미해 봅니다.